매일신문

[야고부] 백해 운하와 마식령스키장

스탈린이 치적을 과시하기 위해 벌인 토목사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1931년에 착공해 1933년 완공된, 발트해와 백해를 잇는 총연장 227㎞의 백해 운하(러시아어로 '벨로모르카날')이다. 이 운하 건설은 '부농' '부르주아 전문가' '파괴분자' 등을 가둬 둔 강제노동수용소 '굴라그'를 경제 사업에 활용하는, 이른바 '굴라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업이었다.

이 프로젝트 입안 당시 스탈린을 만류하는 의견이 많았다. 운하를 건설해봤자 다닐 배가 없어 투자비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개의치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국의 수많은 굴라그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반혁명분자'의 노동력이었다. 스탈린은 반대자들에게 굴라그 운영을 맡은 오게페우(OGPU, 연방국가정치보안부)가 노동력을 충분히 공급해 운하를 맨손으로 파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공사는 진행됐다. 그뿐만 아니었다. 노예 노동의 본질적 문제점인 능률 저하를 막고 배급 식량 낭비를 막기 위한 관리 대책이 병행됐다. 작업량을 채우지 못한 죄수들은 굶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죄수들이 죽어나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채울 죄수들은 굴라그에 얼마든지 있었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약 2년 반의 공사 기간 모두 20만 명이 굶어 죽고, 총에 맞아 죽고, 쇠약해져 죽고, 얼어 죽었다. 또 시체 처리도 늦어져 뼈만 남아 뒹굴기 일쑤였는데 자갈과 함께 콘크리트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이렇게 문자 그대로 인골(人骨) 위에 세워진 백해 운하에 서유럽 진보진영은 찬양으로 일관했다. 스탈린이 국빈으로 초대했던 영국의 시드니 웹'베아트리스 웹 부부는 "위대한 공학적 업적"이며 "인간 갱생의 승리"라고 했다. 프랑스 드골 정권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낸 작가 앙드레 말로 역시 끔찍한 인명 희생에는 침묵한 채 운하의 '장엄미'를 칭찬하기만 했다. 서구 진보좌파들의 위선과 도덕적 타락의 '커밍아웃'이었다.

논란 끝에 마식령스키장 남북 합동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돼 남측 선수들이 전세기로 북한으로 들어갔다. 마식령스키장은 아동의 강제노동으로 건설된 인권유린의 현장이란 비판을 받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합동훈련을 하는 것은 아동 강제노동 사실을 못 본 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과 합동훈련을 합의한 문재인 정부는 도덕적으로 저열(底劣)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백해 운하를 찬미한 서구 좌파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