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창단한 리버풀 FC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명가'로 꼽힌다. 1부 리그에서 18차례나 우승을 차지했고,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다섯 차례 정상에 올랐다. 이웃 도시이자 1부 리그 우승 횟수에서 통산 1위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차례)와의 '노스웨스트 더비'는 EPL 최고의 눈요깃거리 가운데 하나다.
리버풀은 국내에서도 인기 구단에 속한다. 하지만 리버풀 서포터스들인 '콥'(Kop)은 종종 놀림감이 된다. 최근 팀이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탓이다. 리버풀은 지난달 15일 EPL 선두 맨체스터시티를 격파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다음 경기에서 최하위권인 스완지시티, 웨스트브롬에게 내리 졌다. 예상대로 국내 축구팬 사이에서는 '리중딱'(리버풀은 중위권이 딱이야)이란 조롱이 쏟아졌다.
요즘 자유한국당 행태를 보면 '한야딱'(한국당은 야당이 딱이야)이라 불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동 없는 비판, 책임감과는 거리 먼 의정, 개인 보신에 급급한 처신 등등 도대체 수권정당다운 떡잎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아마추어로 규정한 문재인 정부가 잇따라 헛발질을 해도 도무지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한다.
홍준표 당 대표를 위시한 지도부는 정부'여당 약점을 파고들겠다는 일념 아래 연일 무시무시한 말로 대중의 이목을 끌려 한다. 마치 언어유희의 끝이 어디인지 보여주겠다는 기세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림이 없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나 궁금하기도 하지만 내일이 기대되진 않는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믿음을 주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최근 청와대의 여야 원내대표 회동 제안에 "청와대가 애들 장난치는 데냐"라며 일축했다. 그의 말대로 여권의 국면 전환용 꼼수라 하더라도 제대로 맞붙어야 건질 게 있다.
한국당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여러 차례 보수 혁신을 약속했지만 오히려 퇴보한 듯한 느낌만 든다. 소속 국회의원'단체장들은 여전히 꽃길만 걸으려 하고, 대놓고 면박을 주는 당 대표에게 한마디 항변조차 못한다. '숭배 대상'만 이명박'박근혜에서 교체된 모양새다.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당의 면모도 일신하지 못했다. 홍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 인물난에 대해 "후보가 될만한 분들에 대한 내사가 이뤄지고 있다. 야당이다 보니 들어오실 분들이 보복이 두려워서 못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오히려 야당의 힘은 유권자의 지지에서 나온다는 걸 아는 예비후보들이 외면해서가 아닐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당은 어느새 만만한 동네북이 됐다. 지방선거에서 최소 6곳의 광역단체장 선거를 승리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는 홍 대표의 공언은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당과 다른 야당들은 "무기력에 빠져 사실상 좀비 수준에 가깝다"(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현 여권이 적어도 네 번에서 다섯 번은 계속 집권해야 한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며 비웃는다.
누구나 아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원제는 '황제의 새 옷'이다. 여기에서 새 옷은 '자신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거나 심각하게 바보인 사람에게 안 보이는 옷'으로 설명된다. 황제 또한 처음에는 사기꾼 재봉사들의 말에 "내가 그런 옷을 입는다면, 누가 자신의 지위에 부족한지도 알아낼 수 있고, 현명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도 구분할 수 있겠구나. 당장 옷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위풍당당하게 나선 거리에서 한 아이에 의해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황제는 행진을 멈추지 못한다. 허세 때문이었을까? 자괴감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자신을 속인 사기꾼들의 재능에 감탄한 나머지 넋이 나가서였을까? 넉 달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 뒤에 한국당이 무슨 소리를 늘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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