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프랑스 알프스 끝자락의 르 뚜베에서 태어난 앙리 디동(Henry Didon)은 론도라는 소도시의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소신학교는 신학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공부하는 초중등 교육과정을 말한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남학생들이 모여 사는 기숙학교이다 보니 여러 가지 운동 경기가 곧잘 열렸는데, 그중에서도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론도 올림픽'이었다. 서기 393년을 끝으로 옛 헬레니즘 문화의 결정체였던 고대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공통의 가치를 위해 일시적이나마 화합을 도모했던 올림픽의 이상은 군데군데 그 이름을 빌려주고 있었고, 론도 올림픽도 그중의 하나였다.
아무튼 디동은 열다섯 살 때 이 대회에 나가서 삼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소신학교에서 건강한 신체와 명민한 지성을 갈고닦아 로마의 교황청립 안젤리쿰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무사히 철학과 신학 과정을 마친 끝에 사제 서품을 받고 프랑스로 돌아온 디동 신부는 당대의 설교가로 이름을 떨치면서 신학자요 교육자로서 활동하게 된다.
강건한 신체와 격정적인 음성, 그리고 고전 학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춘, 그야말로 지덕체를 겸비한 교육자였던 디동 신부는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체육 활동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운동 경기를 교육과정에 도입했다. 그리하여 디동 신부는 1891년 아퀘이(Arqueil)에서 청소년 운동대회를 열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명설교가답게 인상적인 권고로 장내를 뒤흔든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citius, fortius, altius)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행사를 후원했던 디동 신부의 친구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이 말을 기억했다가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첫 회의에서 올림픽의 모토로 제시하여 이후로 올림픽 하면 떠올리는 구호가 되었다.
그런데 디동 신부가 제시했던 모토가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서 살짝 변형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처음 디동 신부가 제시했던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로 순서를 바꾼 것이다. 단지 단어 순서의 차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다르다. 디동 신부가 '더 높이'를 강조하면서 구호의 마지막에 놓은 뜻은, 신체를 단련하고 정정당당하게 겨루면서 화합하는 운동 경기를 통해 더 높은 이상에 다다르자는 다분히 윤리적인 권고에 있었다. 반면 쿠베르탱 남작은 '더 강하게(힘차게)'를 강조하면서 올림픽이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마당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으리만치 좋은 뜻이 담겨 있지만, 아무래도 천주교 신부 입장에서는 디동 신부의 모토가 좀 더 솔깃하다. 특히 이번 평창올림픽에 걸린 시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칼럼을 쓰는 오늘도 CNN 뉴스는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주한 미대사로 내정되었던 빅터 차라는 분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가 내정 철회되었다는 해설이 뒤따른다. 미 대선 기간에 벌어졌던 '러시아 스캔들'로 특검이 진행되고 있는 워싱턴 정가에서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대북 강경책이 모색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을 평화를 갈구하는 마지막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는 가벼이 폄훼될 것이 아니다. 대결과 갈등을 넘어서 평화를 희구하는 세계인의 대축제, 평창올림픽이 그런 기대를 채울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더 빨리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더 강하게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이라는 더 높은 이상에 도달하는 기회가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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