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강한 문화, 순혈이 아닌 혼종

옛말에 좋은 며느리를 얻으려면 큰 산을 두 번 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정된 유전자군 내에서 교배를 반복하면 생존에 불리한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알았던 것이다.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지배체제의 확립과 권력세습을 위해 폐쇄적 혼인관계를 맺은 왕족이 단명한 경우가 많다. 문화도 마찬가지인데 조선 말 붕당은 패거리 문화를, 잘못된 연고주의는 기득권을 위한 순혈주의를 낳았다. 인간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그 사회의 전통과 가치관의 모문화(母文化)라고 볼 때, 문화적 순혈주의는 어쩌면 종족적 순혈성보다 더 집요하고 위험할 수도 있다.

자신의 편견을 재확인하는 뉴스와 의견만을 들으려 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자칫 '문화적 근친상간'을 초래하고 근본적으로 나와 다른 것은 적이라고 인식하는 '사회적 질병'이 될 수 있다. 호환이 되는 문화, 다양성을 용인하는 문화는 그 사회의 진화와 경쟁에 유리하다.

예를 들면, 시리아 출신 아버지를 둔 스티브 잡스, 러시아 출신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오바마가 공존하는 미국이나 신라, 발해, 티베트 등 이민족의 인재를 관료로 포용하여 문화 강대국이 된 당나라를 들 수 있다.

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호랑이, 사자 등 고양이과(科) 동물은 교배로 1대 잡종은 가능하나 2대 잡종은 불가능하다. 반면, 개, 코요테, 자칼 등 개과(科) 동물은 세대를 거쳐 번식이 가능하다. 그 결과 개과(科) 동물은 약 10억 마리로 늘어났으며, 야생에서 살던 개는 인간의 보호 아래 애완견으로, 더 나아가 인간의 동반자인 반려견으로 그 신분이 격상됐다.

문화도 그래야 한다.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가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통해 문화적 자산이 되어 권력의 옆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강한 문화'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는 외부적으로 세계화, 탈민족주의 등의 '글로벌 담론'과 내부적으로는 새터민, 조선족, 다문화 가정 등의 실체적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사회가 도구의 발전에 따른 획일적인 분업의 문화였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협력과 연결, 모방과 창조가 동시에 일어나는 융복합의 혼종문화가 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다양성과 호환성이 인정되는 혼종문화는 내일 제출해야 할 오늘의 숙제인 것이다. 동종교배와 순혈의 '약한 문화'가 아닌 이종교배와 혼종의 '강한 문화'를 만들어 보자.

"힘을 동반하지 않은 문화는 내일이라도 당장 사멸하는 문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윈스턴 처칠의 의견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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