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잉카문명의 성지
험준한 산행, 네 발로 오른 정상
파노라마 풍경에 탄성 절로
종교성지, 비밀요새 등 추측 무성
정교한 석공기술로 수로까지 건설
성스러운 분위기에 지난 삶 성찰
◆잉카의 신비 마추픽추(Machu Picchu)
남미를 그림책으로 표현한다면 표지 장식은 단연코 마추픽추다. '신(新)세계 7대 불가사의'인 마추픽추는 잉카문명의 최고 걸작이기 때문이다. 땅에서는 한눈에 가늠할 수 없지만, 하늘에서 보면 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마추픽추를 '공중도시'라고 부른다. 칠흑같이 어두운 이른 새벽에 일어나 경건한 마음으로 신비스러운 공중도시를 찾아 길을 나섰다.
많은 여행객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인데도 길게 줄을 서 있다. 미니버스를 타고 경사가 가파르고 굽이진 우루밤바 계곡을 한참 올라갔다. 산 위 주차장에 도착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루밤바 강이 기다란 물줄기가 되어 소리 없이 흐르고 있다. 운해로 덮여 겹겹이 싸인 산들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새들도 접근하기 힘든 안데스산맥 꼭대기에 인류가 만들어낸 찬란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몇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돌들은 면도칼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정교하게 맞닿아 있다. 잉카인들의 정교한 건축술에 놀라움을 자아내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주위를 빙 둘러 높이 솟은 기암절벽들과 무성한 숲들은 공중도시의 고독과 신비를 더욱 절절하게 느끼게 했다. 고대 잉카제국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잃어버린 태양의 도시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인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꼭꼭 숨겨져 있었다. 문명의 패망과 저항이 고스란히 서린, 해발 2,400m 안데스 밀림 속 바위산에 남아 있는 공중도시 마추픽추는 그렇게 내 가슴에 안겼다.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조화를 이룬 천상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졌다. 잉카인들의 종교적 성지, 고산지대의 비밀요새, 버려진 공중도시 등 추측만이 난무할 뿐 마추픽추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여행자들은 영혼의 울림을 주는 이곳에서 자신과의 내밀한 대화를 나누며 과거와 현실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느낀다.
위대했던 잉카문명의 유적지답게 마추픽추에는 잉카인들이 살았던 주택과 계단식 경작지 등 신비로운 문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안데스 산맥의 장엄한 경관과 우루밤바 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위치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공중도시에 서 있는 듯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하늘 가까이에 세워진 잉카 도시에서는 어떤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든 모두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나온다.
공중도시는 산 위에 3m 높이의 계단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40개의 계단 대지 면적을 모두 합하면 13㎢에 달한다. 잉카인들은 여기에 200호가량의 돌집들을 지어 살았다. 안데스산 봉우리에 돌의 도시를 건설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도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이다.
'나이 든 봉우리'인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는 해발 2,682m의 와이나픽추(Wayna Picchu)는 '젊은 봉우리'답게 타협 없이 뾰족하다. 여행객들은 네 발로 오를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산이 높고 험하기로 유명한 해발 3,082m의 몬타냐 마추픽추(Montana Machupicchu)를 오르기로 했다. 가끔은 기어오르고, 때론 절벽에 몸서리치면서 2시간 정도 산행을 했다. 와이나픽추에서 내려다본 마추픽추가 '단 렌즈'로 본 풍경이라면, 몬타냐 마추픽추에서는 '광각 렌즈'로 보는 것처럼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몬타냐에서 내려다본 마추픽추는 최고의 예술작품이었다. 우르밤바 강이 마추픽추를 휘감고, 와이나픽추를 배경으로 한 마추픽추가 구름 커튼에 가렸다가 걷힌다.
구름 속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낸 마추픽추에 여행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동의 탄성을 지르며 넋을 놓게 된다. 물결 치는 안데스산맥의 능선과 그 속의 오래된 공중도시, 압도된 석축의 담장, 깊은 계곡의 원시림과 하얀 구름 사이로 마법 같은 안개가 산등성이를 따라 일렁이며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한다.
◆풀리지 않는 비밀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마추픽추 유적은 몇 가지 구역으로 나뉜다. 신성한 광장과 세 창문의 신전, 콘도르 신전, 태양의 신전, 귀족 거주지, 농경지역과 서민 거주지, 수로, 해시계 인티와타나 등이 볼거리이다. 계단식 농경지, 해시계 등 고대 잉카인들의 지혜를 엿보는 것도 놀라운 경험이다. 고산지대의 절경까지 어우러져 잊지 못할 울림을 선사한다.
먼저 간 곳은 망지기의 집이다. 망지기의 집에서 바라보는 마추픽추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페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동물 라마도 쉽게 만나게 된다. 태양의 신전은 커다란 자연석 위에 둥근 형태로 쌓아 올린 구조물이다. 건물 위쪽의 창에서 들어오는 태양빛을 관찰하여 계절의 변화를 읽어, 농경에 적용시켰다고 한다. 잉카의 새해인 6월 21일이면 태양빛이 창문에 들어온다고 한다. 콘도르 신전은 바닥에는 머리와 부리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활짝 펼친듯한 날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밑으로 좁은 통로가 있고 돌 의자가 있는데 이곳에서 희생 의식이 치러졌던 장소로 추측된다고 한다. 신전 뒤로는 미라가 발견된 동굴이 있고 죄수를 가둬 놓은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잉카인들은 정교하게 돌 틈을 깎아 도시 전체로 물을 흐르게 하여 자유롭게 물을 사용하였는데 그 기술은 현대에서도 감탄할 만한 발달된 수로시설이라고 한다. 세 창문 신전은 하지나 동지에 창문을 통해 정확히 태양빛이 들어차서 이것을 보고 천문대 기능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t이나 되는 커다란 돌을 다듬고 정확하게 쌓아올린 축성술이 참으로 경이롭다. 자연석을 용도에 따라 정밀하게 가공해 성벽을 쌓고 건물을 세우고 식량을 해결하고자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논밭을 만든 후 관개시설까지 갖춘 마추픽추는 신비 그 자체라고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잉카 제국의 마지막을 함께한 곳이자, 오랜 세월 세속과 격리된 신비로운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추픽추! 도로는 만들었지만 바퀴는 사용하지 않았고, 정교한 석축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치를 몰랐으며, 금과 은을 제련했지만 철은 몰랐던 사람들, 죽은 이를 기리는 제문은 읊었지만 문자가 없었던 잉카문명은 어느 순간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잉카의 혼이 고고하게 서려 있음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마추픽추 돌길을 걸으며 잉카인들의 비밀을 간직한 듯한 돌담 아래에 앉아서 살아온 시간을 되짚어 보고 미래의 꿈을 펼쳐보았다. 주변을 감도는 성스러운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더니 빛 하나가 반짝하고 커졌다. 옛 잉카인들이 마소처럼 족쇄를 차고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올라왔을 산등성이가 붉게 물든다. 사라진 잉카인들도 이 노을 속에서 고된 하루를 마치고 잠이 들었겠지.
이제 나도 여행이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가서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에 감사하며, 내 마음속 꼭대기에 아무도 모르는 채 남아 있는 태양의 도시 마추픽추 같은 영토를 가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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