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문단의 '미투'

포털사이트 실시간 이슈 검색어 순위에 연이틀 'En 시인'이 오르내렸다. 이미 실명까지 알려지면서 당사자는 매우 곤혹스러울 터다. 그제 En 시인의 문제가 처음 인터넷에 뜨고 파문이 커질 무렵, 꽤 오래전 신문사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고인이 됐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J 시인'의 얘기다.

그도 'En 추문'과 비슷한 일로 문인들 입에 오르내린 당사자다. J 시인은 이따금 대구를 찾으면 꼭 쌍화차를 내놓는 다방에서 지역 문인들과 만났다. 그런데 옆자리에 젊은 여성 문인이나 독자, 다방 여주인이 앉으면 꼭 상대 여성의 손을 쓰다듬는 버릇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말 꺼낸 선배도 민망했던지 대충 말을 끊었고 '주책 맞은 늙은이' 정도에서 그쳤다. 지금과는 사회 분위기가 다르던 때라 문단 야사나 기행(奇行)쯤으로 여겨 그냥 넘겨버렸다.

하지만 최영미 시인은 한 계간지에 발표한 시 '괴물'과 TV 인터뷰에서 작금의 문단 상황을 그대로 폭로했다. 'En 시인'으로 대표되는 소위 문단 권력의 상습적이고 집요하며 경계를 넘어선 추태는 충격적이다. 이미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로 촉발된 박범신, 배용제 등 성폭력 파문 때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냥 흘려버리거나 묻어둔 이야기들이 결국 괴물이 되어 한국문학을 덮친 것이다. 게다가 최근 법조계 '미투'(Me Too) 파문에다 한국시인협회장에 선출된 감태준 시인의 과거 제자 성추행 추문까지 새롭게 불거졌다.

그동안 한국문학계는 '글 좀 쓴다'는 것을 벼슬로 여겼고, 문단 지명도는 우러러보기를 강요하는 훈장 그 자체였다. 서로 패가 갈려 칸막이를 만들고, 맞서면 끝까지 비틀고 부정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이런 이상한 풍토가 괴물이 자라는 젖줄이 된 것이다. En 시인이 60년간 100권의 시집을 낼 동안 저지른 숱한 추행도 알량한 문학의 이름 밑에 깔리고 덮였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괴물들이 싸지른 똥물'에 더럽혀진 독자의 상처다. 누가 나서서 씻어줄지, 또 한국문학이 그럴 힘은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어느 트위터의 지적처럼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냄새 술냄새 담배 쩔은내 풍기는 역겨운 입들'이 한국문학의 적폐로 남는 한 문학이 다시 일어설 공간은 매우 좁아 보인다. 괴물을 보고 놀라 또다시 입을 다문다면 사태는 더욱 어려워지고, 치유는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몸집이 아무리 커져도 괴물은 그저 괴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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