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겨울 세한도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겨울 북서풍 한파가 매섭게 불었다. 온대성 식물들이 추운 겨울을 나기에는 강수량도 부족하고 건조하다. 이 혹독한 추위를 이기며 나무들은 잘 견디고 있었다. 자연은 사람과 솔기 없이 이어져 있다. 자연 정원이 사계절 아름다운 것은 자연성이 인공의 시간을 이겨낸 결과이다.

아침, 조성진의 드뷔시 피아노곡을 듣는다. 방안 가득한 여리면서도 섬세한 색채를 간직한 조용한 건반 두들기는 소리들. 숲속을 걷는 속도로 연주될 때 매우 느리게 안단테로 이어졌다.

드뷔시는 프랑스 생 제르망 앙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프랑스풍이 아니다. 오히려 이질적인 '가믈란' 음악에 심취했었고, 서양미술과 다른 모네와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화를 좋아했다. 그는 피아노 시인이었다. 모네가 사랑한 '수련'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대며 그 아우라를 흡수하려 했다. 연못에 수련이 피면 꽃잎에 부서지는 햇살을 포착하며 피아노 건반 위에 그대로 옮겨서 연주했다고 조성진은 말한다. 그의 음반은 시가 되었고 상상력의 정원에 연꽃을 피워 올린다.

차분한 아침 햇살과 오후의 따뜻한 햇볕은 연극 무대 조명만큼 경이롭기만 하다. 겨울에는 꽃을 보기 어렵고 그나마도 색채감이 부족한 계절이다. 그렇다고 아주 색채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갈색의 수피와 키 큰 상록수들은 겨울 정원의 골격을 세우고 감각적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겨울 정원에는 꽃이 피는 찰나와 꽃가루를 모으는 꿀벌들의 부지런함이 없지만, 아침 햇살에 투영되는 창호지의 불투명한 따뜻함이 영혼의 심지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봄의 정원이 생명이 움트게 하는 축복이라면, 여름은 혈기 방장한 청춘의 에너지가 되리라. 가을의 그것들은 단풍의 컬러와 원숙함의 여유가 있다. 겨울 추위는 추위대로 내쉬는 숨길에 하얀 김이 서리고 나무는 나무끼리 부딪치는 그 몸짓과 소리들에 모든 것이 차갑게 얼어버렸지만 생명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안으로 치열하게 봄이 오는 생명의 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안으로 갈무리하며 고요하고 깊은 호흡으로 대지와 함께 숨 쉬고 있다. 산책로를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면 붉은 백당나무 열매와 망개 열매가 푸른 이끼 사이에서 그 붉음을 간직하고 있다. 어쩌다 쑥부쟁이 마른 꽃대 사이에서 먹이를 찾다가 추운 몸을 내보이며 고라니가 후다닥 눈앞에서 도망가기도 한다.

겨울 정원은 어떤 계절보다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봄과 여름은 꽃으로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무채색으로 즐기는 겨울의 정원은 단순히 겨울 정원이 아니다.

겨울 정원은 겨울의 풍경화이다. 이미 공산 무인도를 즐기고 세한도를 완성시켰다. 사철 푸른 호랑이가시나 태산목 같은 상록수의 그 푸르름을 겨울에도 감상할 수가 있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길로 들어갈 때 소나무와 바람은 풍입송(風入頌)을 악보 없이 연주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 혼자서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보라. 물론 우리는 환경의 차이로 영국의 윈터가든과 같은 겨울 정원을 연출하기 어렵지만 가까운 대구수목원이나 동명의 경상북도 지정 1호 민간 정원이 20년의 노력으로 최고의 정원이 되었다.

금년 겨울에는 하루 두 끼만 먹는다. 오후에는 차를 마시거나 손님이 오면 시늉만 내는 것이다. 마음도 한가하고 몸이 가벼워진다.

옛 선인들이 "말이 적고 일이 없어서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고 하였다. 홀로 있는 사람은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집을 며칠 비웠더니 우물의 배관이 꽁꽁 얼어 버렸다. 폭설이 내려서 길이 없어지고 폭우에 귀가 먹먹해졌다면, 차라리 한 사나흘 고립되었다면 오히려 반가웠으리.

며칠 큰절에서 물을 길어다 차를 마시고 있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은 불편함과 부족함에서 배우기도 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안다면 그곳에도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홀로 있을 때 더 진리와 멀어질 수 있다고 한다. 사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행복한 삶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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