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국적(國籍)의 의미

30년 전만 해도 축구만큼은 한국이 일본을 압도했다. 한국 선수들은 일본 대표팀을 한 수 아래로 보고 내심 만만하게 여겼다. 그런데, 1990년 브라질 출신 백인 선수가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루이 라모스(1957~)가 치렁치렁한 머리를 휘날리며 송곳 같은 패스를 찔러넣을 때마다 TV 앞의 한국 팬들은 가슴이 철렁하곤 했다. 라모스의 실력은 아시아 수준을 넘어섰으니 한국 팬 입장에서는 '저 선수만 없으면…'이라고 간절히 바랄 정도였다. 그러면서 "일본 사람답다. 이기기 위해 백인을 일본 대표로 둔갑시키고 별 치사한 짓을 다 한다"는 비난까지 내뱉었다.

일본축구협회가 고심 끝에 축구 선수로는 한물간 33세의 노장 미드필더를 귀화시켜 활용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일본은 1992년 중국에서 열린 다이너스티컵에서 한국 대표팀과 개막전과 결승전에서 두 차례 맞붙어 모두 비겼고, 승부차기 끝에 우승컵까지 안았다. 일본 축구는 그때부터 승승장구해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한 도하의 비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짧은 황금기를 구가했다.

'라모스 효과'를 톡톡히 봤기 때문인지, 그 뒤에도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의 로페스 와그너, 2002년 한일월드컵 때의 알레산드루 산투스 등 브라질 출신 대표 선수가 줄을 이었다. 일본은 이미 20여 년 전에 대표팀을 순수 혈통으로 구성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치사하고 염치없는 짓이 아니라,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화'개방화에 앞서 있었다. 세계를 상대하는 경제대국과 민족주의에 경도된 개발도상국의 차이인지 모른다.

대한체육회가 체육 분야 우수 인재를 특별 귀화 형식으로 한국 국적을 획득할 수 있게 한 것은 2010년부터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 145명 가운데 15명이 귀화 선수다. 남자 아이스하키팀에는 '파란 눈의 태극전사'가 7명이나 있다. '대표팀의 다문화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인이 거의 없다는 점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한국인은 글로벌화에 늦게 눈을 떴을지 모르지만, 적응 속도만큼은 단연 최고다. '내가 인간인 것은 필연이지만, 프랑스인이 된 것은 우연일 뿐이다'는 몽테스키외의 말이 생각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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