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미세 먼지와 가상 화폐

사회에 새로운 현상이 생겨나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기존의 말을 조합하여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존의 말이 가진 의미 때문에 새로운 현상을 잘못 파악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미세 먼지'라고 하면 먼지 중에 입자가 미세한 것이라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떠오른다. 그 때문인지 미세 먼지가 중국의 황사나 매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NASA와 환경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서울의 미세 먼지는 절반 정도가 국내에서 생긴 것이다. 국내 발생의 75%는 주로 자동차나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 등이 화학 작용을 하면서 생긴 2차 생성물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티끌이나 흙먼지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유해 미세 입자' 정도가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있다.

최근 이슈의 중심에 있는 '가상 화폐'라는 말 역시 그 이름 때문에 여러 가지 오해를 낳고 있다. '화폐'는 동전이나 지폐처럼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가상'이라는 말을 붙이니까 '가상 세계에서 거래에 사용되는 화폐'라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 화폐를 설명하면서 '사이버 머니'나 카카오톡의 초코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화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가상 화폐에 대한 논쟁은 '통화'로서의 '신용' 문제가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화폐에다 통장에 찍힌 돈까지 합쳐서 이야기를 할 때는 '통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는 원가가 1천원도 안 되는 5만원권, 통장에 숫자로 존재하는 1억원과 같은 통화로 그만큼에 해당하는 실물을 살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은행이나 국가가 신용을 보증해 주기 때문이다. 달러화가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근원은 미국에 대한 신용이 있기 때문이다. 가상 화폐가 등장한 것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 은행들이 무너지고 여러 나라들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내자 국가와 은행의 신용에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는 농협 해킹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트코인은 믿음이 안 가는 국가나 은행의 인증 대신 이용자들이 그물망처럼 얽혀 신용을 보증해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기업이 신용을 보증하는 카카오톡의 초코와는 다른 것이다. 본질적 성격을 보자면 '가상 화폐'보다 '이용자 신용 보증 통화'가 더 적절한 이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름을 어떻게 하든 문제는 그런 세계를 만들어낸 이도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가 그 세계의 코드를 조작하거나 해킹을 당하면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것을 보증할 주체가 없다. 불로소득을 바라고 그 세계로 뛰어드는 모험을 하는 것은 젊은 세대가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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