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애(가명·49) 씨의 얼굴과 몸 곳곳에는 수술 봉합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정 씨가 "아직도 눈을 감으면 머리 위로 피가 쏟아지는 느낌이 든다"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 씨의 수술 전 사진에는 얼굴 주변과 오른손에 크고 깊은 상처가 패어 있었다.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일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동거인이 휘두른 칼에 몸과 마음 만신창이
정 씨는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그날의 기억을 힘겹게 끄집어냈다. 지난해 연말 술에 취한 동거인 김모(59) 씨가 "같이 죽자"며 정 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동거인은 정 씨의 머리와 뺨 주위를 사정없이 베었다. 정 씨는 목으로 향하는 칼을 손으로 막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동거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정 씨의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수습을 부탁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정 씨는 생명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심각한 출혈로 중상을 입었지만 동맥이 끊어지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정 씨는 30시간이 넘는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살아남았지만 몸은 만신창이였다. 가장 손상이 심한 곳은 오른손이다. 칼은 정 씨의 중지와 약지 사이로 손바닥을 절반 이상 가르고 지나갔다. 봉합수술은 받았지만 신경이 손상돼 감각이 전혀 없다. 움직이려고 애써도 손가락 끝만 살짝 떨리는 정도다. 회복에만 수년이 걸리고 심각한 후유장애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청력과 시력도 심한 손상을 입었다. 날카로운 칼날은 정 씨의 왼쪽 귀부터 뒷목까지 이어지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 씨의 귀는 내이까지 손상을 입어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다. 쓰러지면서 머리에도 심한 충격을 받아 오른쪽 눈이 흐릿하고 사물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인다. 머리 위쪽도 깊은 상처 탓에 100바늘을 넘게 봉합했다. 목 뒤와 팔다리의 상처는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도 찾아왔다. 늘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다. 정 씨는 "수술 후 2주 동안 거동을 하지 못하고 용변을 가리지도 못할 때는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다"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고 누군가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불안하다"고 몸을 떨었다.
◆심각한 장애 남지만 치료는 요원
상처투성이인 정 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경제적인 부담이다. 막대한 치료비와 후유증까지 예상되지만 그의 통장 잔고는 4만5천원이 전부다. 아직 내지 못한 치료비 600만원과 동거인이 정 씨 명의로 받은 대출금 4천만원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 씨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돌변했지만 20년간 함께한 동거인은 착하고 다정했었다"면서 "동거인을 남편으로 믿었기에 생계는 주로 내가 부담했어도 모든 재산은 동거인 명의였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20년간 정 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동거인은 법적으로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남편이다. 정 씨는 "왕래가 전혀 없었던 동거인의 법적 배우자가 1억원이 넘는 동거인 명의의 모든 재산을 가져갔다"고 했다. 동거인 앞으로 들어뒀던 보험금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정 씨는 병원비를 낼 수 없어 입원 한 달 만에 강제 퇴원해야 했다. 그는 현재 한 범죄피해자 지원기관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첫 달은 주거가 보장되지만 이후 언제까지 머물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 기관 지원으로 매주 받는 정신과 치료도 퇴소 이후부터는 정 씨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픈 기억이 많지만 정 씨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떻게든 오른손을 움직여 보려고 계속 애를 썼더니 봉합부위에 염증이 왔다고 의사 선생님이 혼을 내시더라고요. 사고 후에 만나게 된 의사, 경찰관, 지원기관 선생님을 비롯해 모든 분들이 모두 너무 신경을 써 주셔서 말할 수 없이 고맙습니다. 건강만 회복한다면 새롭게 얻은 삶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역본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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