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지도자의 의지

일본이 원자폭탄 두 방을 얻어맞게 된 것은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회담에서 결정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거부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당시 일본 총리였던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郞)가 연합국의 요구에 '모쿠사츠'(默殺)라고 했다. 이 한자어는 일본어에서 '논평을 삼가다'와 '무시하다'(ignore)라는 두 개의 뜻이 있다. 스즈키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했으나 일본 도메이(同盟) 통신이 후자로 번역해 타전했고 이에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실제는 다르다. 전후 공개된 미국 정부 문서에 따르면 포츠담 선언 발표 단계에서 루스벨트 행정부는 일본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와 관계없이 원폭 투하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포츠담 선언을 일본 정부가 수락하겠다고 명확히 밝혔다면 원폭을 맞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가정보다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라는 루스벨트의 의지다. 미국의 역사학자 어니스트 메이에 따르면 그 이유는 1차 대전의 교훈이다. 연합국이 항복이 아니라 휴전으로 전쟁을 종결한 결과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키게 됐다는 것이 루스벨트의 판단이었고, 여기서 '휴전 조건'은 적국과 협상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신념은 1943년 1월 14일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처칠과 회동했을 때 이미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루스벨트는 난색을 보이는 처칠을 설득해 전쟁 목표를 독일'이탈리아'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결정했다. 루스벨트는 그 목적이 "이들 국가의 파괴가 아니라 다른 민족을 정복'억압하는 이데올로기의 파괴"라고 했다. 이는 국가 지도자의 의지에 따라 진정한 평화냐 전쟁 재발의 씨앗을 품은 위장 평화냐가 결정됨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루스벨트의 이런 의지를 배워야 한다. 대화로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은 이미 처절하게 실패했다. 협상→합의→보상→파기의 반복이란 실패는 지난 25년간으로 족하다. 이제는 중단 없는 압박과 제재로 김정은 체제를 빈사지경으로 몰아가는 것 이외에는 북핵 해결의 묘수는 없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따른 유류 부족으로 북한군의 동계 훈련 시작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북한은 한계상황 직전까지 온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의 위장 평화공세에 섣부른 유화책으로 맞장구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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