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코피 터트리기

군 복무를 끝마쳐갈 무렵인 1994년 이맘 때쯤 한반도는 폭풍 전야였다. 전년도에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촉발된 제1차 북폭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최전방 미군기지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던 기자는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 다닌다'는 말년 병장이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난 뒤 비상이 걸렸다. 평소 한밤중이나 새벽에 걸리던 비상이 대낮에 걸린 것이다. 완전군장을 하고 대기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동료 병사들 사이에서는 북한과의 전쟁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제대가 코앞인데…이러면 곤란한데…." 불안에 떨면서 미군 장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주시했다. 전시 작전 계획을 설명하는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고, 걸프전을 비롯해 세계에서 무수한 전쟁을 치른 베테랑답게 차분하고 사무적이었다. 그들에게서 적어도 겉으로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싸움꾼' 미군의 모습은 다르구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전쟁을 무서워하게 된 것은 신병 때 '깜놀'했던 경험 때문이다. 흔히 남자들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처음 총을 쏘아 보았을 때를 꼽는 경우가 많다. 내게는 AT4라는 대전차포였다. 대전차포 실사격 훈련이 있던 날. 기자의 손에 쥐어진 무기는 무게가 5㎏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장난감이 전차를 파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목표물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타깃용 전차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장난감 같은 무기가 뿜어내는 엄청난 화력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저 탱크 안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엄청난 압력에 사람의 겉모습은 물론 장기들까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졌을 것이다. 그날의 경험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어떤 경우에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소신이 되었다. 하물며 핵전쟁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한반도에 위기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동안 숱한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이번은 1차 북핵 위기만큼 심각하다. 미국이 작심하고 북한의 코피를 내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 같아서다. 먼저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뜨리면 이기는 아이들 싸움처럼 작전 이름도 '코피'(bloody nose)다.

북한에게 과연 이 전략이 통할지 의구심이 들지만 미국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는 모양이다. 이미 지난해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함과 동시에 북한의 핵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미국 고위급 관리들의 잇따른 발언 등으로 공격 준비작업을 착착 진행 중임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 전개해 놓은 전략자산들을 볼 때 과연 코피만 내고 말지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회를 하루 앞두고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런저런 대내외 상황 속에서 드디어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됐다. 한반도에도 평화의 기운이 한껏 감돌고 있다. 남북 분단 이후 '백두혈통'으로는 처음으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남한을 방문하고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의 친서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히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초청하면서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지난 10년간 사실상 북한과의 단절 이후 대화를 통한 협상의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러나 곧 잔치는 끝난다. "평창올림픽 성공을 빕니다. 그러나 그 후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치른 평화적 잔치 뒤에 찾아올 어떠한 상황도 평화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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