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모루겟소요

호주에 처음 도착한 백인 정복자들의 눈에는 두 발로 뛰어다니는 동물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원주민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캥거루"였다. 원주민 말로 "못 알아들었다"는 뜻인데 백인은 동물 이름이라고 착각했다. 널리 알려진 캥거루 작명 비화다. 하지만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호주 원주민들은 이 동물을 옛날부터 캥거루라고 불렀다. 제임스 쿡 선장이 남긴 호주 원주민 단어 목록에도 'kanguroo'가 나온다.

터키 수도 이스탄불도 유사한 작명 비화를 갖고 있다. 이스탄불은 1천600년 동안 여러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콘스탄티노폴리스(그리스), 비잔티움(로마) 등으로 불렸다. 오스만 제국 패퇴 후 이곳 근처에 도착한 투르크(지금의 터키) 사절단이 그리스 어부에게 도시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그리스 어부는 "이스띤볼린?"이라고 되물었다. "저 도시요?"라는 뜻이었는데 사절단은 도시 이름으로 오해했다. 신비로운 느낌마저 풍기는 '이스탄불'의 유래가 그리스말로는 '저 도시'라는 평범한 의미라니 약간은 실망스럽다.

캥거루·이스탄불의 작명 비화와 비슷한 일이 요즘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벌어지고 있다. '모루겟소요' 열풍이 그것이다. 올림픽 프레스센터 앞에 서 있는 세 남성의 동상이 그 주인공이다. 김지현 설치작가의 작품인데 벌거벗은 채 총알을 머리에 뒤집어쓴 형상이 매우 기이한 느낌을 준다.

동상의 정체가 궁금했던 한 일본 기자가 주변의 자원 봉사자들에게 물어봤는데 한결같이 "モルゲッソヨ" (모루겟소요)라고 답하더라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이후 이 동상 사진은 삽시간에 '모루겟소요'라는 별명이 달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퍼지면서 각종 패러디물이 넘쳐나고 있다. 혹자는 모루겟소요가 개회식 인면조와 함께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의 최고 스타라고까지 꼽는다.

같은 말을 쓰면서도 오해가 쌓이는 판국인데 언어가 다르면 이처럼 소통에 어려움이 생긴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세계에는 6천800여 개의 언어가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눈부신 발전으로 언어 장벽이 무너질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늦어도 10년 이내에 인공지능이 주요국 언어를 실생활에 불편함 없이 통·번역해 낼 것으로 보인다. 그 꿈같은 미래가 기대되지만, '캥거루' '모루겟소요' 같은 '양념성' 작명 비화가 생겨날 소지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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