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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 동맹국 중 한국만 통상압박 받는데 이유도 모른다는 정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한(對韓) 통상 압박에 대해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해나가라"고 지시한 것은 원칙에서 보면 지당한 소리다. 미국의 조치가 현저히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53%의 관세 폭탄을 맞을 12개 철강 수출 국가에 최대 수출국인 캐나다는 물론 수출 증가율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인 독일과 3배 수준인 대만은 제외되고, 우방국 중 한국만 포함된 것만 봐도 그렇다. 문 대통령이 수출 다변화로 대미 수출의존도를 줄이라고 지시할 만큼 격앙할 만하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강경 대응을 선언한 데는 통상과 안보는 분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안보와 통상의 논리는 다르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해설'은 이를 보여준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이렇게 생각해도 미국이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점이다.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양국 관계가 더 불편해지는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관세 폭탄 대상 12개국에 한국이 포함된 것은 '통상'의 시각에서 보면 분명히 비정상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그 이유가 통상 문제가 아니라 다른 데에 있다면 우리의 대응도 거기에 맞춰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한 정확한 대응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관계자는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이는 한심하다는 비판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위기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현재 한미관계의 한 단면이다.

지난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폐기 거론과 올 들어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철강 수입 규제 등 일련의 통상 압박은 외교·안보 정책에서 문 정부가 미국과 엇박자를 내온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국의 통상 압박은 문 정부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불만의 신호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이런 지적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사실 외교·안보와 통상의 분리는 고전주의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말일 뿐 현실과 거리가 먼 희망사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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