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연금술사

한 줄의 시, 유언처럼

추필숙 작
추필숙 작 '다랑논'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연금술사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만큼 도는 빛, 그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나아가는 거리가 1광년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처럼 백만 광년의 고독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속에서 읽는 한 줄의 시는 틀림없이 우리의 삶을 비추는 섬광으로 다가오리라는 기대를 품고 표지를 넘겼다.

책날개에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일컫는 하이쿠를, 류시화 시인의 해설로 읽는다'는 요지의 글이 적혀 있다.

하이쿠는 450여 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정형시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 5'7'5의 열일곱 자 음수율을 지키고, 시가 짧은 만큼 한 번에 읽어 내려가는 것을 막고 여운을 주기 위해 중간에 '끊는 말'을 넣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을 우선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문학성이다.

"단순히 촌철살인의 재치나 언어유희로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은유와 상징을 통해 삶에서 얻은 깨달음, 인간 존재의 허무와 고독, 자연과 계절에 대한 느낌, 그리고 해학을 표현한다. 이 한 줄 시를 공통적으로 '하이쿠'라 부른다"(589쪽)라는 대목을 보면 정형시에서 출발한 하이쿠가 한 줄 시라는 포괄적인 형식으로 유지,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심는 여자/자식 우는 쪽으로/모가 굽는다 (잇사), 꽃잎이 떨어지네/어, 다시 올라가네/나비였네 (모리타케), 새는 아직/입도 풀리지 않았는데/첫 벚꽃 (오니쓰라), 잡으러 오는 이에게/불빛을 비춰주는/반딧불이(오에마루), 시원함이여/종에서 떠나가는/종소리 (부손)…."

밑줄은 점점 늘어난다. 어느 순간, 밑줄을 아껴야지, 다짐하고 만다. 펜 잡은 손을 가슴에 얹고 잠시 호흡에만 몰두하면서, 읽기에 공을 들였다. 공감이 주는 감동을 실컷 맛보았다고 할까? 책이 책답다. 시의 진정성이 충분히 와 닿았다. 백 마디 말보다 이름 한번 불러주거나 손 한번 잡아주거나 눈 한번 맞추는 것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우리 삶을 통틀어 통째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의 단면을 낱낱이 본 느낌이 든다. 본질적인 고독과 서툰 삶, 그 삶의 부조리 속에서 결국 사라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진정성과는 또 다른 방향에서 압축을 풀어내고 생략을 읽어 내는 '미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명쾌한 해석의 영역을 넘어 가슴을 울리는 작품들이 수두룩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시 해석은 백인백색이다. 읽는 이의 깊이에 의해 재탄생되는 것이 시다. 문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의 읽기와 남(류시화)의 읽기를 서로 견주어 볼 수 있다. 마음은 뒤에 감추고 모습을 보여 주라던 바쇼의 말과는 반대로, 하이쿠를 읽는 우리는 모습 뒤에 감추어 둔 시인의 마음을 내 마음속으로 옮겨오면 되는 것이다.

한 줄도 길고, 백 줄도 짧을 수 있다. 그러나 딱 한 줄로 백만 광년의 고독을 말할 수 있는 책은 이 책뿐이다. 유언처럼, 한 줄 시의 힘이 참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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