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천안함 폭침 주범의 방남, 이런 남북 접촉이 무슨 의미가 있나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예정대로 25일 남한 땅을 밟았다. 그런데 그 경로가 서울로 향하는 길목인 통일대교가 아니라 그 동쪽에 있는 전진교였다. 자유한국당과 반북단체 회원 등의 김영철 방남 반대 시위로 통일교가 막히자 우회한 것이다. 전진교는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에 군사용으로 만든 것으로, 일반 차량은 간신히 교행할 수 있을 만큼 폭이 좁다. '개구멍으로 들어왔다'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비아냥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옹색한 방남이다.

이는 그의 방남 수락이 떳떳하지 않음을 문재인 정부가 자인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목함 지뢰 사건 등 각종 대남 도발을 지휘한 주범이 아니라면 문 정부나 김영철 모두 전진교로 우회라는 체면 구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 아쉬워 이렇게까지 하면서 김영철의 방남을 관철시켜야 하느냐는 비판이 빗발치는 이유다.

북한이 김영철을 보낸 데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 남북 대화를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가고, 남남갈등을 유도해 남한의 북핵 대응 전선에 균열을 내며,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고 한미 공조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이미 상황은 이런 노림수대로 돼가고 있다. 그의 방남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대립하면서 남남갈등은 격화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인적 제재 대상임에도 문 정부가 그의 방남을 수락하면서 대북 제재는 다시 구멍이 뚫리게 됐다.

한미 공조의 균열도 마찬가지다. 미 국무부 대변인이 김영철에게 "천안함에 가보라"고 한 것은 단순히 그를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를 향한 불만의 표시일 가능성이 더 높다. 미국 정부 내의 분위기는 훨씬 더 격앙돼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무부 대북 제재 감시단원 출신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북한학)가 "김영철의 방남 수용은 문재인 정부의 거대한 실책"이라고 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을 지시한 증거는 없다"며 그의 '행적 세탁'에 열을 올린다. 그의 방남 합리화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런 식의 남북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국민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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