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승자만 기억되는 것 같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가끔 있다. 어느 분야든, 어느 사회든 간에 '아름다운 꼴찌'가 존재한다. 일본의 경주마 '하루우라라'(春うらら'화창한 봄날)는 '루저(loser)의 별'로 불리며 연전연패했지만, 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1998년 11월 데뷔해 2006년에 113회 연속 입상 실패를 기록하고 은퇴했어도, 일본에서는 아직도 경주마라고 하면 '하루우라라'부터 떠올린다.
흔히 꼴찌마를 두고 '똥말'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똥말'이 일본에서 2000년대 초반 욘사마(배용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그 이유는 오랜 불황 속에 조기 퇴직자, 실패한 수업생, 도산한 사업자 등 사회 낙오자들이 이 꼴찌마를 통해 위안받고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언제나 꼴찌를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100엔짜리 '하루우라라'의 경마권이 퇴직'도산을 막기 위한 부적으로 유행했고, '하루우라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수많은 사람이 TV 앞에서 '똥말'의 꼴찌 장면을 지켜봤다.
'하루우라라'를 스타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상업적 이유 때문이다. '하루우라라'가 뛰던 곳은 시코쿠섬의 고치경마장이었는데, 이 시골 경마장은 적자투성이로 문 닫기 직전이었다. 경마장 측이 '하루우라라' 스토리를 만들었고, 그것이 적중해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으니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도 위대한 똥말 '차밍걸'이 있다. 2008년 데뷔해 2013년 은퇴할 때까지 5년간 101회 출전해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한국 경마 사상 최다 연패를 기록했다. 최고 성적은 2011년 8월에 거둔 3위가 고작이다. 2015년 만 10세의 나이에 산통으로 눈을 감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동화, 창작공연 등으로 제작됐고 기념석도 세워졌다.
어제 폐회한 평창동계올림픽에도 승자와 패자의 희비는 극명하게 갈렸다. 시골 의성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여자 컬링 대표팀 '팀 킴'은 은메달에 머물렀음에도, 아기자기하고 강단 있는 모습으로 최고 스타가 됐다. 반면, 19일 남자 스키점프 단체전에 출전한 한국대표팀은 12개 팀 가운데 12위로 꼴찌를 했다. 이날 스피드스케이팅, 봅슬레이 등 메달 유망 종목에 가려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방송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지도 않았다. 영화 '국가대표'(2009년)와 비슷하게 꼴찌의 설움은 여전했다. '아름다운 꼴찌'라고 부르기엔 서글퍼 보였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