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첫 수확을 누리다, 33㎡ 나만의 영토

주말농장 5년 차 김효선 씨

도시농부 김효선 씨가 대구농업마이스터고 정문 오른쪽에 있는 어린이농부학교 농장에서 겨울 동안 재배한 봄동과 상추를 뜯고 있다.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도시농부 김효선 씨가 대구농업마이스터고 정문 오른쪽에 있는 어린이농부학교 농장에서 겨울 동안 재배한 봄동과 상추를 뜯고 있다.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회색 건물에 갇힌 도시민들은 하루하루 비루한 삶의 연속이다. 뭔가 자연 속에서 자신을 찾고 찾고 싶어 하는 동경을 하게 된다. 도시 내에 있는 주말농장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주말농장은 누구나 잠시 짬만 내면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작은 텃밭 하나에 느끼는 삶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손수 땅을 일궈 채소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참된 삶을 일깨워주고 노력의 기쁨이 뭔지를 알게 해준다. 또 농약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주말농장은 아이들에겐 자연을 배우는 놀이터와 마찬가지다. 가족과 함께 텃밭을 일구면 가족애도 키울 수 있다. 주말농장 5년 차인 조각가 김효선(51) 씨를 통해 행복한 도시농부의 즐거움을 살펴봤다.

◆봄동 뜯고 무 꺼내 먹는 재미 쏠쏠

25일 대구농업마이스터고 정문 서쪽에 자리 잡은 대구도시농부학교 텃밭. 여성 농군 김효선(51) 씨가 장화를 신고 밭에 나왔다. 추운 겨울은 지나가고 따스한 봄볕이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밭에는 작년 가을에 파종한 봄동과 상추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그는 오늘 저녁에 봄동을 뜯어 쌈밥을 해먹을 요량이다. 과도로 봄동 아래를 조심스레 자르니 손바닥만 한 봄동이 먹음직스럽다. 봄동은 고소하면서도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봄동 다섯 뿌리를 잘라 소쿠리에 담고는 옆쪽 고랑에 있는 무구덩이로 자리를 옮겼다. 괭이로 구덩이 흙을 살살 걷어내니 겨울을 견딘 싱싱한 무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가을에 수확한 농작물을 흙에 파묻어 놓고 꺼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그는 무 3개를 꺼내 소쿠리에 담고 다시 흙을 덮었다. 또 옆 두둑 맨땅에는 시금치가 땅위에 바짝 붙어 있다. 겨울 내내 삭풍을 견디며 살아있었다. 그는 시금치 몇잎도 뜯었다. 그리고 농장 그늘막 창고 줄에는 무청이 말라 시래기가 돼있었다. 그는 해가 질무렵 서둘러 범어동 집으로 떠났다.

◆억척스러운 여성 농군 "농사 준비 Go~"

그는 2014년 봄부터 대구도시농부학교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처음 3년간은 33㎡ 남짓 농사를 짓다가 작년부터 390㎡ 규모의 어린이농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자연친화적 정서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어린이농부학교는 당초 논이었다. 그가 손수 밭으로 일구었다. 괭이와 삽질을 통해 평평한 논에 두둑과 고랑을 만들었다. 손수레로 자갈도 일일이 주워냈다. 억척스러운 도시 여성 농부다. 이런 부지런함은 작년 어린이 400명에게 체험 기회를 주었다. 그는 올해도 풍년 농사를 꿈꾸고 있다. 구획을 나눠 감자, 상추, 근대, 시금치, 쑥갓, 열무, 무, 배추, 고구마, 당근을 심을 예정이다. 3월 중순 파종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농사 준비작업을 해야 한다. 범어동에 사는 그는 농기구를 실은 승용차를 몰고 매일 농장으로 나온다. 먼저 작년 가을에 수확하고 남은 고추대를 뽑아냈다. 고추대는 말라 비틀어져 앙상했다. 다음은 두둑에 흙 섞기 작업을 해야 한다. 삽질을 통해 위 흙과 아래 흙을 뒤집어줘야 한다. 농장 흙 섞기는 10일 정도 시일이 걸린다. 그리고 흙을 섞고 나면 퇴비를 넣어줘야 한다. 퇴비도 40포대 구입했다.

◆땅의 푸근함이 자신을 밭으로 이끌어

그는 30년 가까이 나무에 삶을 새기는 조각가다. 나무를 다루다 보니 나무마다 생장 과정을 봤다. 나무도 땅에서 자랐다. 나무의 성질에 자신이 순응해야 맘에 드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어떤 나무는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혼자 견뎌냈다. 작업대 위에 놓여 있는 나무의 성질을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땅이 궁금해졌고 흙이 궁금했다. 땅의 푸근함이 자신을 밭으로 이끌었다. 그는 농사의 농(農)자도 모르는 도시 여성이다. 유년시절 성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외가를 방문해 몇 번 본 게 전부다. 처음 도시농부학교 교육 후 텃밭 33㎡를 배정받았다. 이웃 할머니의 밭모양, 흙모양을 어깨너머로 보며 따라 만들어보기도 했다. 할머니 텃밭의 흙은 찰떡에 콩고물처럼 포슬포슬했는데 자신의 밭은 거칠었다. 그는 하루종일 호미로 흙덩어리를 깨 부드럽게 만들었다. 흡사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비가 온 후 다시 원래대로 굳어버렸다. 나중에 퇴비를 섞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첫해 감자, 고구마, 상추, 토마토, 고추, 시금치, 김장배추, 무를 심었다.

◆농사는 자연이 짓고 난 그냥 거들 뿐

땅의 성질을 알아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 그는 이곳에서 텃밭 3년을 하고 나서야 땅의 성질을 알았다. 물빠짐이 안 좋을 땐 두둑을 높이 고, 흙의 영양분이 부족하면 퇴비를 충분히 섞곤 했다. 그는 이곳에서 당근 재배에 성공한 첫 농부다. 이웃 농부들은 배수 상태가 안 좋다며 당근 재배를 말렸다. 그래도 그는 도전장을 냈다. 두둑을 높이 쌓고 퇴비를 듬뿍 넣었다. 당근 씨앗을 뿌리고 틈틈이 달려가 물을 자주 주었다. 자라나는 싹을 주기적으로 솎아내기도 했다. 당근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그는 수확을 하면서 굵은 당근이 흙 속에 총총 줄서 박혀 있는 모습을 보고 감격했다. 그가 지은 작물은 그 어떤 유기농 작물보다 맛이 좋았다. 오이의 맛은 일반 오이의 10배쯤 농축한 향을 느꼈다. 그는 수확의 재미도 대단했지만 흙을 일구어 밭을 만들고 씨앗을 뿌려 싹이 나면 보살피고 가꾸는 과정이 더 행복했다. 그는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생활이 활기차게 변화했다. 신비한 자연의 섭리와 위대한 힘도 발견했다. 농사는 자신이 짓는 게 아니었다. 들판의 바람, 햇빛, 새, 벌레들이 힘을 합해 짓고 있었다. 자신은 그냥 거들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조각 작품 활동과 어린이농부학교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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