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아직도 북유럽에서 복지만 보십니까?

북유럽의 강점은 내용보다 오히려 과정

실용주의 접근 위기마다 정파 간 합의

금융·환경문제, 신뢰·혁신으로 풀어

위기때 변화 두려워 않고 투명한 논의

세계는 유럽을 바라보고 유럽은 북구를 바라보고 북구는 덴마크를 바라본다고 했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들은 흔히 복지강국으로, 최근에는 복지·경제의 결합모형으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며 놀라게 되는 것은 제도의 내용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많은 국가들에 닥칠 '미래의 문제'를 먼저 겪으며 보여준 실용주의적 접근, 그리고 혁신을 위해 터놓고 합의해가는 신뢰 기반의 관리 방식 때문이다.

20세기 초중반 북유럽 국가들은 세계사에 유례없이 관대한 복지체제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과도한 세금과 국가주의, 방만한 복지혜택으로 1970년대부터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한다. 때맞춰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화려하게 등장하자 북유럽 신화는 그대로 사라지는 듯했다. 이에 더하여 1990년대 초 북유럽 금융위기는 상황을 최악으로 몰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단초는 정치권에서 나왔다. 정파에 상관없이 위기 대처에 협력하고 실용적인 정책에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부실은행을 정리할 때는 은행 소유주들에게 책임을 부담시켜 납세자의 불안을 덜고, 개혁 대상을 분류하여 조치를 달리하는 전문성을 발휘했다. 특히 스웨덴의 경우,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금융권을 개혁했는데 이 조직은 정치와는 독립된 전문가 집단이었으며 진행과정을 지속적으로 공개함으로써 대내외의 신뢰를 확보했고 임무가 끝난 후에는 즉시 해체되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세계는 새삼 북구의 선례에 주목했는데, 이들 국가의 투명성과 신뢰가 거듭 부각되었다.

금융위기를 끝낸 후에도 공공부채는 일관되게 축소되었고 복지혜택을 낮추는 대신 노동시장과 민간경제를 활성화하는 조치를 이어갔다. 1993년 금융위기 당시 GDP 대비 70%에 이르던 공공부채는 현재 30%선으로 호전되었다. 이 비율은 일본의 5분의 1, 미국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고 우리나라 부채율보다도 낮다. 시장경제와 혁신을 독려하기 위해 과거 60%에 육박하던 북유럽의 법인세율은 현재 불과 22%. 동일한 국제 기준을 적용했을 때 우리나라 법인세율인 25%보다도 낮다. 덴마크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력적 해고가 쉽도록 하면서도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시장수요에 맞는 학습 시스템을 뒷받침하여 재취업이 용이하도록 하는, 이른바 유연안정성 모형을 개발했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 이데올로기는 혁신을 향한 실용주의였다. 핵심 정책에서는 정당 간 합의가 이루어졌고 정부는 과정에 투명했으며 국민은 그런 정부를 믿었다.

다른 나라보다 앞서 겪으며 준비한 사례로 환경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환경위원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생산자 확대책임(EPR), 재생에너지 개발 등에서 북유럽은 초기부터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환경 문제는 모두의 참여와 실천이 중요한 만큼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 논의, 합의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현재 덴마크의 자동차 등록세율은 160%- 수도 코펜하겐이 친환경 자전거 도시가 된 현실적 이유이다. 스웨덴 가정 폐기물의 재활용·재생 비율은 99%, 매립비율은 1%에 불과하다. 급기야 지역난방에 연료로 사용할 폐기물이 부족하여 노르웨이, 영국 등에서 쓰레기를 수입하고 있다. 한편 노르웨이가 2025년까지 100% 전기차량을 운행하겠다고 공표한 것은 빈말이 아니다. 19세기 후반부터 개발한 수력발전과 그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전기에너지- 당시 정부는 25년간 논의를 거쳐 수자원을 공유화했고 1917년, 값싼 전기 공급을 의무조항으로 포함하는 최종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노르웨이 전기에너지 가격은 유럽 평균의 절반이다. 정부가 100여 년 전부터 공을 들인 자원정책이 오늘날 친환경 전기차 보급의 기반이 된 것이다.

북유럽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여다보면 좋겠다. 결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고 구체적으로는 한계도 많다. 그러나 현실과 맞붙어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고, 투명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하여 신뢰와 공감을 얻어내는 운영 방식-그런 과정과 기본 틀에 초점을 두고 진행한다면 우리의 정책 선택지도 훨씬 넓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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