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트코인 투자, 2명 데려오면 최대 1천만원 수당"

[르포] 가상화폐 다단계 업체 가보니

가상화폐 투자를 미끼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다단계 업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상화폐가 상장되면 거액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거나,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초단기 매매를 거듭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속이고 다른 투자자를 모집하면 수당을 주겠다고 현혹하는 식이다.

지난 21일 오후 '비트코인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낸 대구 중구 동인동 한 사무실을 찾았다. 좁은 사무실 안에는 가상화폐 거래현황 화면을 띄워 둔 컴퓨터 두 대와 책상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남성이 '비트코인 투자대행사 대구지부 총책임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다가왔다. 그는 준비된 자료를 펼치며 상담을 시작했다.

"파나마에 본사를 두고 있고, 6개국 10명이 공동 설립한 공신력 있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소 200만원을 투자하면 '에어보트'(Air Bot)라는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이 하루 5천 번 이상 비트코인 시장을 살피며 거래를 한다"고 했다. 시스템 서버가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에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남성은 SNS 메시지를 보여주며 "상장이 유력한 한 코인회사가 거래 정보를 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보여주기는 꺼렸다.

의심 섞인 질문을 거듭하자 이 남성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는 "내 계좌에 수십억원이 있다. 홈페이지에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자신감과 달리 홈페이지는 조잡했다. 입금 내역을 보여주는 창은 해석조차 어려운 번역투였고, 실시간 접속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 계정이 가득했다.

이윽고 그가 본론을 꺼냈다. 투자자를 데리고 오면 '소개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2명을 소개하고 관리를 잘하면 최대 1천만원의 수당도 받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그는 "네트워크 마케팅으로 지급되는 수당이라 본인이 소개한 회원이 얼마나 다른 회원을 유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글로벌 기업이라며 투자를 유인하고,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투자자를 속이는 전형적인 금융사기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네트워크 마케팅'을 들어 회원 유치를 유도하는 것은 대표적인 다단계 투자 방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은 서민의 욕망에 '비트코인'이라는 탈출구를 덧입힌 것"이라 분석했다.

가상화폐를 빙자한 다단계 투자는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대구지검은 최근 가상화폐 상장을 빌미로 다른 투자자를 소개하면 투자금의 40% 준다고 유인, 회원 583명에게서 37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일당을 기소(본지 8일 자 2면 보도)하기도 했다. 엄연한 유사수신 사기지만 단속은 쉽지 않다. 피해를 신고하기 전에 투자금만 받아 종적을 감추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의 신고가 들어오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며 "단속보다는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