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 죄의식 못 느끼는 우리사회 민낯

시인 고은 "격려 차원"…연출가 이윤택 "강제성 없어"

전주연극협회 소속 배우 송원(31) 씨가 26일 오후 과거 몸 담았던 유명 극단
전주연극협회 소속 배우 송원(31) 씨가 26일 오후 과거 몸 담았던 유명 극단 '명태' 최경성 전 대표의 성추행 사실을 고백하며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 YWCA 여성종합상담소, 청주여성의전화 등 충북 20여 개 여성단체는 26일 충북도청 브리핑 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충북 YWCA 여성종합상담소, 청주여성의전화 등 충북 20여 개 여성단체는 26일 충북도청 브리핑 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주대는 조민기의 성추행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에 공개하고 피해자 전수 조사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한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지금껏 숨죽이고 지내던 피해자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 전체에 경계경보가 울렸다.

◆잇따르는 성추행'성폭행 피해 주장

이윤택, 오태석 등 '연극계 거장'으로 불리던 연출가들의 성폭력 주장이 제기된 데 이어 배우들의 성폭력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중견 연극배우 한명구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교수직 등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데 이어 TV'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해 낯익은 중견 배우 최일화도 성추행'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일화는 25일 "당시엔 그것이 잘못인지도 몰랐던, 가볍게 생각했던, 저의 무지와 인식을 통렬히 반성한다"며 사과했다. 최일화는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촬영 중인 드라마와 영화, 광고, 세종대 지도교수직 등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MBC는 최 씨가 출연할 예정이던 드라마에서 해당 배역을 교체하기로 했다.

최근 국립극장장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유명 연출가 김석만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도 성폭력 의혹이 제기되자 공식 사과했다. 김 전 교수는 "어떠한 행동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끄럽고 해서는 안 될 짓임을 깨닫고 있고 제 잘못에 대해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앞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김 전 교수의 실명을 적시하면서 21년 전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김 전 교수가 서울 북악스카이웨이로 가는 택시 안에서 성적 농담을 쏟아냈으며 이어 전망대에서 강제로 키스하고 여관에도 데려갔다. 학교에 상담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고 김 전 교수는 미국으로 1년간 연구활동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교수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폭로의 내용은 제가 기억하는 사건과 조금 거리가 있음을 알린다"고 덧붙였다.

◆진정한 사과 없는 가해자들의 행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일부 행적을 시인하는 듯하면서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일부는 합의된 일이었다는 식으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행태를 보이거나 침묵으로 일관해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구의원 간 성추행 사건으로 몸살을 앓았던 대구 수성구의회 정애향(58) 구의원도 최근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명을 밝히고 미투 운동에 동참할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정 구의원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하나같이 '술에 취해 잘 기억 나지 않는다' '내가 만약 그랬다면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모습이 가장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이달 초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고은 시인은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연출가 이윤택 씨는 폭로 후 며칠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지만, 연기 지도를 하면서 추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성추행당했다고 생각했을 줄은 몰랐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면 사죄하겠다"고 말했고, 성폭행에 관해서는 "성관계가 강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부인해 진정성 없는 '반쪽 사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배우 조민기는 첫 폭로가 나오자마자 바로 소속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내고 '명백한 루머'라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후 학교 측 조사와 징계 사실이 확인되고 추가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자 그제야 "심각성을 인지했다"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그가 이전에 대학생인 친딸과 함께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 터여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실망감은 더욱 크다.

한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최근 미투 운동에 대해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공작을 하는 사람은)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발언을 두고 정치권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인권 문제에 여야나 진보'보수가 무슨 관련이 있나. 진보적 인사는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도 방어하거나 감춰줘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김어준 씨의 예언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댓글단과 보수 언론의 전형적인 이슈몰이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발언도 전체 맥락과는 달리 오해할 만하게 잘라 편집해 집중 공격하는 것이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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