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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만어 世事萬語] 진보의 패거리 적폐

딴지일보 김어준 씨의 말이 논란을 빚고 있다. 그는 최근 미투(Me Too) 상황과 관련, "(공작의 시각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라고 말했다. 침묵을 강요받으며 고통의 세월을 보낸 성폭력 피해자들의 절규를 '문재인 정부' '진보적 지지자'에 대한 정치 공작 프레임으로 덧씌운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열병처럼 번진 미투 폭로에 대해 한마디 말조차 없다가, 26일 '뒤늦게' 엄정한 처벌을 지시했다. 그래도 여성비하·성폭력의 상징적 인물인 탁현민을 청와대 최측근으로 두고 있는 '말 못할 고심'이 대통령의 그동안 침묵에 담겨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만하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꿀 먹은 벙어리였던 것도 이해할 만하다. 성균관대 교수 시절, 정 장관은 성추행을 당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남정숙 전 교수를 외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직 주무장관으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정 장관은 '뒤늦은' 27일 성폭력 근절 보완대책을 브리핑했다.

하지만 대표급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줄줄이 성폭력 가해자로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왜 입을 닫았을까. 평창동계올림픽 때문에 바빠서? 뜻밖에도 김어준 씨의 '예리한 분석'은 현 정부와 일부 진보세력의 비뚤어진 패거리 의식을 전 국민에게 펼쳐보이는 계기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봇물 터진 미투의 발단은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이다. 바로 다음 날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즉각' 철저한 진상조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그리고 고은, 이윤택, 오태석, 조민기 등 문화예술계 저명인사들에게 연이어 미투 봇물이 쏟아졌다. 이재정(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게도 '위선적'이라는 시궁창 물이 튀었다. 그러나 그토록 정의'인권을 외치던 여연, 한국작가회의,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같은 진보적 단체들은 입을 다물거나 한참 뒤에 면피용 대응을 내놓았을 뿐이다.

대체 뭐가 달라졌을까? 고은은 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이고, 이윤택은 보수정권의 탄압을 받은 블랙리스트 1호, 조민기는 촛불 참여 연예인이라고 한다. 연출가 오태석(서울예대에서 퇴출)에 대해서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침묵일관이다. 그가 진보적 연출가이자 교수였기 때문일까. 서지현 검사 성추행 의혹 당사자가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되지 않고 진보·좌파였으면 서 검사 역시 김어준의 공작 프레임으로 매도당할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마저 '우리 편' '네 편' 가르는 패거리 적폐가 아찔하다.

보수적폐 청산이 한창이다. 그런데 진보·좌파의 패거리 적폐는 누가 청산할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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