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세계 최고 텃밭도시를 꿈꾸며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집에는 마당이 있었다. 마당은 평소에는 비어 있고, 딱히 기능이 규정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기능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마당에서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다. 손님이 많을 땐 멍석을 깔고 밥상을 내놓으면 식당이 되고, 무더운 여름밤에 멍석을 깔고 홑이불을 덮으면 침실이 되었다.

비어 있기에 언제든,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시 주택의 '정원'과는 다르다. 도시 주택의 정원이 대체로 관상수(觀賞樹), 관상초, 관상석을 채운 '관상공간'이라면, 마당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일터이자 놀이터였다.

닭들은 마당에서 모이를 쪼았고, 아이들은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어른들은 빨래를 널어 말리거나 새끼를 꼬고, 고장 난 농기구를 고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햇볕에 까슬까슬 마른빨래, 철 따라 새끼를 꼬고 이엉을 엮는 손놀림에서 이웃들은 그 집안의 무탈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당은 집주인의 사적 공간인 동시에 공적 공간이었다. 괭이를 들고 밭으로 나가던 이웃이 불쑥 들어와도 내 공간을 침입당했다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 장소, 방물장수가 예고 없이 들어와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을 펴놓고 집주인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집집마다 마당이 있었기에 동네 사람들은 이웃에 어떤 손님이, 무슨 일로 왔는지, 그 집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까닭에 마당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는 동시에, 지켜주는 안전장치였다.

아파트는 물리적으로 옆집과 붙어 있지만, 이웃을 철저히 차단한다. 옆집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해도, 노인이 홀로 세상을 떠나도 모른다. 아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아무도 모른다. 도시 주택도 마찬가지다. 비록 그 집에 마당이 있다고 하더라도 높은 담과 철조망, 철 대문에 둘러싸인 마당은 이미 '마당'이 아니다. 안전을 위해 높은 담과 철 대문을 둘렀는데, 안전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위태로워 진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 한국의 도시인들이 집집마다 마당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낯모르는 방물장수가 우리 집에 불쑥 들어오게 허락할 수도 없다.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다고 해서 온갖 편리와 사생활을 포기하기도 어렵다. 이웃이 우리 집 밥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도시 텃밭은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마당'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농약을 치지 않은 건강하고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고, 푸드 마일리지와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음식물 쓰레기는 좋은 퇴비가 된다)

아파트라면, 주차면적 확보하듯 텃밭을 확보해보자. 전체 주차면적의 10분의 1 정도만 할애해도 상당수 입주가구가 작은 텃밭을 가꿀 수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텃밭에 들르기만 해도 신선한 야채를 듬뿍 얻을 수 있고,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웬만큼 몸을 움직여도 좀처럼 땀이 나지 않는 노인들도 햇볕 쏟아지는 텃밭에서는 쉽게 땀을 흘릴 수 있고, 가족 외에는 이웃을 모르는 아이들은 마을과 공동체를 알게 된다.

단독주택이라면 이웃집과 우리 집을 가르는 담을 허물면 된다. 폭 30, 40㎝쯤 되는 담을 허물어 생기는 공간을 이웃과 반씩 나눠 텃밭을 가꿔 보시라. 이웃의 얼굴을 마주 보며 멀뚱하게 있자면 불편하지만, 각자 텃밭을 가꾸면 불편함 없이 마당을 회복할 수 있다.

담이 막고 있을 땐 바로 옆집조차 알 수 없지만, 담을 허물고 텃밭을 가꾸면 서너 집 건너까지 인사를 나누게 된다. 봄에 내가 이웃에 상추와 근대를 건네면, 이웃은 가을에 내게 들기름을 건넬지도 모른다.

주택의 담을 허물어 텃밭을 가꾸면 집집마다 작은 마당이 생기고, 마당 있는 집들이 모이면 마을이 된다. 넘기만 하면 몸을 숨길 수 있는 담이 없으니 도둑은 설 자리를 잃는다. 텃밭으로 마을을 형성하면 노인은 덜 외롭고, 아이들은 더 안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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