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에서 가끔 접하는 스위스의 국민투표 소식은 말 그대로 '딴 나라' 얘기이지만 눈여겨볼 대목도 많다. 특히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사회적 실험들이 투표로 확정된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2016년 6월 '기본소득'(Basic Income)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는 스위스식 복지제도 실험의 좋은 본보기다.
이 투표는 모든 성인에게 조건 없이 매달 2천500스위스프랑(300만원), 유'청소년에게는 650스위스프랑(78만원) 지급을 결정하는 절차였다. 비록 76.9%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그 파급 효과는 컸다. 핀란드'네덜란드 등이 잇따라 기본소득 프로그램을 시범 실시하거나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스위스 국민투표는 인구 800만 명 중 12만 명 서명이라는 요건을 갖추면 가능하다. 우리로 치면 청와대 '국민청원' 수준의 서명만 있어도 된다. 나라마다 정치 환경과 제도, 사회적 여건이 달라 일률적인 비교는 힘드나 갈등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사회적 합의 도달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신선한 느낌마저 든다.
스위스 기본소득 실험에서 괴츠 베르너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독일의 부호이자 드럭스토어 체인점인 '데엠'(DM) 창업자인 베르너는 보편적 복지수당 지급을 주창해온 인물이다. 그는 인간이 노동에만 매달리지 않고 보다 창의적인 일에 도전한다면 개인은 물론 사회와 인류 발전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다. 2013년 스위스의 '기본소득을 추구하는 전문가 모임'이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품위 유지에 필요한 기본소득 개념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로(過勞) 사회'에 거부감을 가진 정치인이다. 대선 공약에서 보듯 노동시간 단축은 그의 주된 관심사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생활의 균형 실현'이 포함된 것도 그런 이유다.
노동시간 한도를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런저런 불만도 나오지만 직장인 10명 중 3명이 과로사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한 해 350명이 과로사로 쓰러지는 나라에 우리는 산다. 야간'휴일 근무가 다반사인 현실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중대한 실험이자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고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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