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정이 밥 먹여준다] (3)극단 왔니껴

열정으로 똘똘 뭉친 평균 나이 67세 실버극단

극단 왔니껴의 마뜰연가 공연 장면.
극단 왔니껴의 마뜰연가 공연 장면.
'그리운 예안장터' 공연 뒤 단원들의 모습.

"사투리로 연기를 했어요. 웃기려 애쓰지 않아도 관객들이 웃었어요.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무대에서 보여줬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요."

첫 시작은 2011년이었다. 경북 농협주부대학 장기자랑대회였다. 흥부전을 각색한 '아이 낳기 좋은 세상 흥부놀부전'. 1등을 해버렸다.

연극 무대를 밥벌이로 삼은 적이 없다. 전문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연극을 하겠다는 의지만은 하늘을 뚫었다. 하늘이 뚫린 듯, 우주의 기운이 몰려왔다. 단원들이 모였고, 전문 극단이 돕고 나섰다. 2015년 2월 13일 창단, 그리고 그해 5월 안동문화예술의전당 백조홀에서 창단 공연을 열었다. 임하댐 수몰민들의 애환을 녹여낸 '월곡빵집'이라는 작품이었다.

◆죽을 때까지 무대에

극단 이름도 '왔니껴'라는 사투리 그대로 살려 붙였다. 단원 평균 연령 67세라 '실버극단'이라고들 부른다. 그러나 단기 프로젝트 극단이 아니다. 단원 15명에 어엿한 3년차 극단이다.

크고 작은 무대는 넘쳤다. 곳곳에서 오라고 했다. 지난 3년간 31차례 무대에 올랐다. 회당 관객은 적으면 50명, 많으면 350명에 달했다. 공연 사례비는 30만~500만원. 받는 족족 소품비용으로 상쇄했다. 그러니 늘 적자 상태. 대부분 의상은 배역을 맡은 이가 직접 만들었다. 바빠 정신이 없지만 그럴수록 연습에 더 매진했다. 지난해에는 연습만 72회 열렸다.

극단 '왔니껴'는 단명하지 않을 거라 단언한다. 안동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많으니 새로운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고, 결국 우리가 죽을 때까지 무대에 올라도 다 못 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논리라기보다 확신처럼 들렸다.

3년 새 '마뜰연가'와 '그리운 예안장터'라는 고정 레퍼토리가 둘 더 생겼다. '마뜰'이라 불리는 안동 용상의 선어대 설화를, 안동댐 수몰민들의 이야기를 각각 소재로 했다. 권영숙(70'여) 단장은 "올해도 '안동식혜전', '신세동전탑' 등 안동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무대에 오를 계획"이라고 했다. 이들의 말이 단순한 의지 표명이 아닌 현실이 돼가고 있음을 믿게 된 까닭이었다.

◆연극은 자아를 찾는 과정

당신들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본인이 몰랐던 본인'을 찾아내는 과정이라 했다. 여러 배역을 맡으며 또 다른 나를 본다. 즉, '이것도 나였구나'라며 역할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듣다 보니 연극은 목적이 아닌 듯했다. 실제 연습하는 내내 웃고, 떠들고, 논다고 했다. 연극은 인생을 반추하는 제법 쓸 만한 도구였다. 배우로서의 만족도 역시 물으나 마나였다.

김명희(70'여) 씨는 "공연하고 나면 연습한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좋다.

'안동의 배우'라고 소개될 때는 희열을 느낀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고, 김화자(72'여) 씨는 "나물장수, 주민 등 단역을 주로 했다. 단역이 더 바쁘다. 단역은 여러 역할을 해야 해서 무대에 금방 올랐다, 금방 내려갔다 한다. 의상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필요하다. 소소하지만 중요한 역할이다"라고 했으며, 장경자(63'여) 씨는 "본래 내 이름보다 극중 이름 봉숙이(월곡장터)로 불러줄 때, 연실네(예안장터)로 불러줄 때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했다.

조석탑(70) 씨는 "어려웠던 시절을 연기하면 감정 이입이 된다. 그때의 나를 위로한다.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 연극"이라고 했고, 김혜숙(70'여) 씨는 "식구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남편이 나를 '스타'라고 불렀을 때 인정받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실제 김 씨는 지난해 있은 '사도세자 이선, 그 어두운 일물'이라는 전문 극단의 작품에서 늙은 궁녀 역할을 맡았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왔니껴' 단원들은 영화 한 편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의성, 군위 등 경북 일대를 담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다. '안동실버극단'이라 엔딩 크레디트에 소개된 이들도 짧게나마 존재감을 알렸다.

"지금 우리는 몇 초의 단역이지만, 언젠가는 강렬한 연기력으로 '신스틸러'

(훌륭한 연기로 주연급 활약을 한 조연)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리틀 포레스트'에서 이들은 장터 아낙으로, 은행 고객으로 등 '신스틸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작디작은 비중이었다. 그래도 이들 인생 최고의 장면 중 하나가 불꽃 같은 연기를 펼치는 지금인 것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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