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속 호랑이에 대하여- 나카지마 아쓰시의 '호랑이 사냥'
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라는 작가가 있다. 일본 작가 중 드물게 소년기 6년을 조선에서 보낸 인물로 서른셋 나이로 요절한다. 조선 체류 기억이 강렬했던 것일까. 몇 편 안 되는 그의 유작 중 조선을 소재로 한 소설이 네 편이나 된다. '호랑이 사냥'(1934)은 그 네 편 중 한 편이다. 자동차가 다니고 기차가 달리던 1920년대, 그것도 경성에서 호랑이 사냥이라니 이 무슨 야만적 풍경이냐는 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카지마 아쓰시가 겪은 조선은 그랬다.
소설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6년을 체류한 경험이 있는 일본인 '나'가 조대환이라는 조선인 친구에 대한 기억을 서술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호랑이 사냥 역시 그런 기억 중 하나이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나는 우연한 기회에 조대환과 그 아버지의 호랑이 사냥에 동행하게 된다. 그 호랑이 사냥에서 나는 조대환과 그 아버지 같은 조선 지배계급의 냉혹하면서도 야만적인 이기심을 목격한다. 그들이야말로 마음속에 호랑이의 강인함이 아닌 야수적 냉혹함과 야만적 이기심을 키우고 있는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주인공 나의 단편적 기억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다가 보면 조대환의 마음속 호랑이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지 드러난다. 그 퍼즐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이 조대환의 아버지이다. 소설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조대환의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고위 관리, 즉 황제의 신하였던 인물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되자 그는 일본여자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일본인 학교에 넣어 일본인 교육을 받게 한다. 식민지 조선인에서 벗어나 일본제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 철저한 신분세탁을 한 것이다.
이처럼 조대환의 아버지에게 있어서 '힘'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삶의 최우선적 가치이다. 소설에서 조대환이 '진정으로 강하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보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본인이 되어야 하는데 일본인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은 '강함'보다 '비열함'과 '이기심' 같은 잔혹한 야망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힘이라는 것이 겸손한 태도로 타인과 소통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선한 의지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그 누구도 그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울러 내 삶의 뿌리가 아무리 보잘것없고, 헛되더라도 그 뿌리를 부인하는 순간 내 삶이 힘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편협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시선에서 보자면 나카지마 아쓰시의 소설 역시 제국주의적 우월감에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도 문학도 그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념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강한 호랑이가 아니라 비열하고 잔혹한 호랑이가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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