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림하는 남자, 나는야 '전업主夫'

전업주부 6년 차 박석준 씨

남성 전업주부 박석준 씨가 미끄럼틀에서 둘째 아들 우영이와 함께 미끄럼틀을 타고 있다.
남성 전업주부 박석준 씨가 미끄럼틀에서 둘째 아들 우영이와 함께 미끄럼틀을 타고 있다.

집에서 전업주부로 생활하는 남성이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비경제활동인구 중 육아가사를 하는 남성은 모두 17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업 육아가사 남성은 2003년 10만6천 명을 시작으로 2015년 15만 명, 2016년 16만1천 명에 이어 작년 17만 명까지 늘어났다. 반대로 육아가사만 하는 여성은 2015년 708만5천 명, 2016년 704만3천 명, 작년 694만5천 명으로 계속 줄고 있다. 남성이 집에서 전업주부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좋지 않다. 먹고 노는 사람이 하는 일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일과 가정이 양립하기 위해 집안일은 여성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살림하는 남성들도 '독박 육아'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구에 사는 박석준(39) 씨는 남성 전업주부 6년 차다. 아내는 직장에 다니고 시간이 자유로운 그가 집에서 아이 2명을 키우고 있다. 아직 '샤이 파파'(shy papa)지만 그의 당당한 전업주부 경험담은 예사롭지 않다.

◆"아빠" 두 팔 벌려 달려오는 아들

박 씨는 오후 4시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되면 둘째 아들 우영(4)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어린이집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가정어린이집이다. 아빠는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어린이집 현관문을 여니 놀고 있던 우영이는 두 팔을 벌리고 "아빠" 하며 달려왔다. 아빠는 "우리 우영이 오늘 잘 놀았어"라며 아들 얼굴에 뽀뽀했다. 교사로부터 아들을 인계받은 아빠는 우영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우영이는 놀이터에서 잠시 놀자고 응석을 부렸다. 아빠는 "그래 잠시만 놀고 가자"며 놀이터로 향했다. 우영이는 가방을 벗어 던지고 미끄럼틀에 올랐다. 아빠는 미끄럼틀 밑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아들을 잡아주었다. 10여 분 놀다 놀이터를 나왔다. 이번에는 아파트 슈퍼가 보였다. 아들은 과자를 사달라고 졸랐다. 아빠는 할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슈퍼에 들어갔다. 아들은 초콜릿 등 과자를 몇개 가져나왔다. 아들은 "이 과자는 내가 먹고, 이 과자는 누나 줄 거야" 하고 생글생글 웃었다. 아빠는 계산대에서 과자값을 지불하고 아들 손잡고 집으로 향했다.

◆육아집안일 24시간이 모자라요

전업주부인 아빠는 하루 24시간이 빠듯하다. 아침 일찍 아내를 출근시키고 나면 오전 9~10시 아이들을 등원시켜야 한다. 아이들 아침 먹이고 양치질시키고 옷 입히고 가방 챙겨주고…. 아빠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유치원에 다니는 큰 딸 연수(8)는 집 앞에 오는 버스를 태워 줘야 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 아들은 아빠가 어린이집에 데려다 줘야 한다. 아이 둘을 등원시킨 후 집안 정리와 청소, 설거지를 하면 낮 12시가 넘는다. 그러고 나서 마트에서 장보기를 한다. 햄, 고기 등 식료품과 요구르트, 음료수 등 간식거리를 사놔야 한다.

오후 4시가 넘으면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 아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큰딸은 유치원과 미술학원을 마치고 오후 5시 30분쯤 차를 타고와 집 앞에서 받아야 한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고 엄마가 늦으면 저녁밥 먹이고 목욕을 시켜야 한다. 오후 8시가 넘으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상황극 놀이를 함께 한다. 오후 9시 30분에서 10시에는 아이들을 재워야 한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한다. 아빠는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눕는다.

◆아빠 육아는 먹고 노는 사람이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육아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 하는 일로 여기고 있다. 사람들은 낮에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저 남자 정체가 뭐지?'라며 이상하게 본다. 그도 처음엔 백수처럼 보일까 봐 부끄러워 집 밖에 못 나갔다고 한다. 설사 집 밖에 나가도 동네 엄마들과 시선이 마주칠까 두려웠다. 육아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일종의 편견 때문이다.

한번은 둘째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행사가 있었다. 그는 엄마 없이 아빠 혼자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그날 행사에 자신만 참석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빠로서 아들에게 정말 미안함을 느꼈다. 또 큰딸 미술학원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연수는 엄마 없어요?" 그때는 정말 당황했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아이 친구들도 놀러오는 것을 꺼린다. 애가 말을 안 듣고 떼를 쓸 때도 있다. 혼자 아이 둘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땐 그는 "내가 왜 독박 육아를 해야 하나"는 생각도 했다. 육아 초창기에는 자존감도 떨어졌다. 나는 없고 아이들만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애나 키우는 참 불행한 삶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주어진 상황에 맞게 아빠의 역할 최선

아내는 아기를 낳고 휴직해 각각 1년씩 모유로 아기를 키웠다. 휴직이 끝나 직장에 복귀하면서 육아는 자연스레 아빠의 몫이 됐다. 아빠의 육아는 아직 힘들다. 커뮤니티나 강좌 참석은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다. 그는 이왕에 시작한 육아를 조금 당당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는 틈만 나면 SNS 게시물을 통해 육아 정보를 찾는다. 학원이나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동네 엄마들과 대화를 통해 많이 듣는다. TV를 보며 요리도 많이 배웠다.

그는 육아를 누구보다 소중한 일로 여기고 있다. 그는 결코 독박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내는 6년 전부터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다. 가사일은 그가 거의 도맡고 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아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도 점점 커가면서 친구랑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는 아이들이 훌쩍 큰 모습에 고맙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내도 육아를 맡은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아내는 집에 오면 "고생했제"라는 말로 화답한다. 그는 이제 육아 칼럼도 쓰고 있다. 그는 육아하는 아빠들이 조금 더 당당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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