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거부 못하는 권력세계
성희롱·추행·폭행 구분 이유 없어
저열한 도덕성 확인한 사회 '괴물'
특별법 통해 '욕망 트러스트' 파괴
안희정 충남 도지사가 수행 비서의 미투(Me too) 폭로로 지사직을 사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시간 만에 심야회의를 열어 출당과 제명 방침을 정했다. 바로 수사가 시작되고, 후보들은 선거 운동을 중단했다. 대부분의 미투는 이렇듯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는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로 촉발된 En 시인 사태를 살펴보자. 요지는 En 시인이 자신의 시적 '영감'이나 기분 전환을 위해 여성 문인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것이다. 본인은 침묵하고 주변에서 최 시인을 역공하다가, 마침내 거물답게 En 시인이 외국 언론을 통해 반격했다. '나는 부끄러울 일을 하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에서, '역사 앞에 당당했던' 박정희, 12·12와 5·18의 책임자 전두환이 떠오른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질서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부득이했다.'
혹자는 어디 감히 독재자, 광주 학살 책임자와 세계적 민족 시인을 비교하느냐고 소리 높일 것이다. 다른 혹자는 잡문이나 쓰는 글쟁이와 위대한 영도자, 구국의 결단을 같은 반열에 두느냐고 반박할 것이다. 양자는 본질이 같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성과 제일주의, 대를 위해 소는 희생돼야 한다는 전체주의, 부패한 권력을 누리려는 더러운 욕망. 여전히 가해자는 뻔뻔하고 해결은 요원하다.
En에게 묻는다. 군국주의 일본군이 조선 처녀를 다룬 방식과, 여성 문인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성노예의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와 죄의식 없는 당신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진보는 개인의 자유와 약자의 인권에 주목하기에 보수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그 진보가 원로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인권을 외면한다. 노벨상 후보를 보호하려고, 부당하게 최영미 시인을 비난한다. 그런데도 진보가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전체주의와 차이가 있는가? '국민을 먹여 살리려고' '소수 방해꾼의 입을 막은' 박정희와 다른가?
미투는 '사회적 약자가 성적인 의사결정권을 침해받은 경험을 공유하고 바로잡으려는 운동'이다. '약자의 침해받은 성적 의사결정권'이 핵심이다. 사회생활하는 대다수 남성은 '희롱' '추행'에 관한 한 자신도 잠재적 가해자로 인식하고 동질감을 갖는다. '희롱' '추행'은 '가벼운 범죄'라는 함의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다르다. 상종 못 할 인간이다.
현실에서는 '희롱'이 '추행'으로, '추행'이 '폭행'으로 수위가 높아진다. 피해자가 단호하게 자르면 '희롱'에서 끝나겠지만,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성적 폭력'의 특성상 피해자는 절대로 단호하게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희롱'과 '추행' '폭행'을 구별할 이유가 없다. '성적 의사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성폭력'으로 호칭하자. '성폭력'을 성기의 접촉만으로 좁게 해석할 필요 없다. 손목이든 입술이든 허벅지든 허리든 엉덩이든, 성적인 의사결정권을 침해하기는 마찬가지다.
En은 우리 사회의 양심을 대변한다는 두 세력, 민주화 세력과 문화예술인 집단의 지지를 받아왔다. 우리는 '괴물'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문단의 의식과 도덕성 수준이 정치권보다 훨씬 저열하고 퇴행적임을 확인했다. '침묵과 복종의 카르텔'이라 말하지만, 훨씬 음습하고 끈끈한 '트러스트'다. 석유왕 록펠러의 '악의 제국' 같은. 우리 사회 곳곳에 똬리 튼 이 더러운 욕망의 트러스트를 어떻게 깨부술 것인가?
미국은 반(反)독점법(Anti-Trust Act)을 제정해 록펠러 제국을 해체했다. 우리도 '미투특별법'을 제정해 더러운 욕망의 트러스트를 무너뜨리자. 특별법에는 가해자의 즉각적 직위 배제, 가해자가 권력에서 내려갈 때까지 공소시효 중단, 입증책임의 전환, 집단소송제, 징벌적 배상, 광범위한 방조죄 인정, 형량 합산제 등 다양한 민·형사상 특례 조처가 포함돼야 한다.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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