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은 높은데 존재감은 별로 없는 직책이 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부통령이 그렇다. 미국 현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 그가 요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엉뚱하게도 '미투(#Me Too) 운동' 덕분이다. 펜스는 '자신의 아내를 제외한 다른 여성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해 놓고 엄격히 지키고 있다. 이름하여 그의 이름을 딴 '펜스 룰'(Pence Rule)이다.
사실, 펜스 룰의 원조는 고(故) 빌리 그레이엄 목사다. 미국 개신교의 대표적 지도자인 그레이엄 목사는 1948년 복음 집회에서 전도자들의 성적(性的) 부도덕을 막을 해결책으로 '아내 아닌 여성과 함께 있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는 규칙을 발표했고 이를 죽을 때까지 지켰다. 그가 이를 어긴 것은 한 번뿐이다. 힐러리 클린턴과의 식사였는데 처음에는 정중히 고사했다가 개방된 공간에서 테이블을 함께 쓰면 된다는 클린턴의 제안을 받아들여 예외를 허용했다.
빌리 그레이엄 룰과 펜스 룰은 성적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는 종교적'수양적 지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 룰은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자기방어 방편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펜스 룰을 지키면 성적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펜스 룰은 그나마 이해할 만하지만, 미투 운동의 반작용이 '여성 혐오'라는 대척점으로 치달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성 혐오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미소지니'(Misogyny)다. 한글 발음상으로는 어감이 좋지만 여성을 병적으로 싫어하고 적대시하는 심리 현상을 일컫는 단어라서 입에 담기 주저될 정도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 평등 사회로 바뀌어 나가면서 생기는 과도기적 현상 중 하나가 미투 운동인데 이것이 여성 혐오로까지 비화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 혐오는 두말할 것도 없고 펜스 룰 역시 과도하면 새로운 형태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남성이 여성과의 일대일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강해지면 여성이 조직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승진할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투 운동은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거대한 흐름이며 인류가 승화시켜야 할 통과의례다. 일부 부작용도 없지 않겠지만 미투 운동 바람이 크게 지나간 뒤의 세상은 지금보다 한결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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