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대구음악遺事<유사>♪] 대구 공군비행장서 열정의 위문공연 '메릴린 먼로'를 추억하며

1954년 2월 16일 메릴린 먼로가 대구 동촌 공군비행장에 왔다. 한국전에서 싸우고, 아직 떠나지 않은 UN군 장병들의 위문 쇼를 하기 위해서다. 그날부터 나흘간 코미디언 밥 호프를 사회자 삼아 동갑내기(1926년생) 최은희와 백성희 그리고 김동원과 함께 전선을 누빈다. "내 생애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코리아다. 꽁꽁 어는 겨울 야외무대에서 짧은 옷을 입고 추위에 떨며 군 위문공연하던 나흘간은 내 생애 가장 뜻깊은 시간이었다"라고 그녀의 자서전에서 고통과 보람을 말했다.

먼로는 그해 1월 14일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 중 대구로 온 것이다. 동촌 위문 공연 때 병사들에 둘러싸여 전투기에 걸터앉아 그녀의 특기인 천진난만한 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 천사의 모습을 느낀다. 미국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을 최고로 치는 나라이다. 어디 줄 서는 모임에 가면 군인들을 먼저 끼워넣어 준다든지 싼 음식 먹는 병사들을 보면 고급 스테이크를 대접하는 신사 등은 자주 보는 광경이다. 신혼여행 중에 대구에 온 먼로의 행동은 개인의 아름다운 심성도 있었겠지만 미국인 전체의 보편적인 사고를 느끼게 하는 사건이다.

그녀는 배우였지만 춤과 노래에도 뛰어난 소질을 갖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미남 배우 로버트 미첨과 함께 출연했던 미국 서부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그녀가 기타 치며 부른 동명의 영화주제곡은 영화와 더불어 오래 남을 명곡일 것이다. 군 위문 공연 때도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원래 옷을 잘 벗는 그녀이지만 혹한의 한국 전장에서 짧은 옷 몇 가지 걸치고 쇼를 하고 다녔으니 동사할 뻔했다. 그때 골병든 탓일까 아니면 불행한 출생과 성장의 상처 탓일까 그녀는 사랑 찾아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상대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케네디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대구 방어선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부의 낙동강과 중부의 다부원 그리고 동부의 영천, 안강을 지키지 못했으면 적화통일 되었을 것이다. 이 방어전에서는 전군이 선방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로 공헌한 것이 대구에 기지를 둔 공군이다. 몇 년 전까지 대한민국의 최대의 공군기지는 대구였다. 최신예 비행기 팬텀도 대구가 그 기지였고 현재도 최신형 F-15 K도 대구가 주기지이다. 전쟁 끝나고도 한참 동안 미국 공군이 동촌에 주둔했었다. 당시 K-2 앞길은 미국 서부영화에 나오는 환락의 거리 같았다. 간판은 영어로 되어 있었고 술 취한 미국 공군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메릴린 먼로가 엄동설한에 그것도 신혼여행 중에 대구 공군비행장에 왔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미국에서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녀가 왔다 갔다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다. 남의 나라는 조금이라도 이름있는 사람이 다녀가면 반드시 자그마한 비석을 만들어 그 사실을 남긴다.

대구선 폐 철교나 공군비행장 입구 길에 '먼로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그마한 비석을 세워 '강에서 내 사랑을 잃어 버렸으니 평생토록 사무치게 그립겠지요. 돌아오지 않는 강 밑으로 영영 가버린 님'이라고 쓰인 돌아오지 않는 강의 가사를 새겨 놓으면 대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것이다. 전쟁 중 창공을 날아가 영영 돌아오지 임들은 아직도 잊지 않았겠지. 그 명랑했던 새댁이 춤추고 노래하던 1954년 그 추웠던 2월의 대구 K-2 공군비행장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