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언제나 행복하고 싶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주로 '미래'의 행복을 꿈꿔왔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4~1963년생)는 보다 잘 사는 나라를, 서슬 퍼런 독재정권 아래 살았던 386세대(1964~1972년생)는 민주화된 나라를 행복으로 꿈꿨다. 그러나 지금 2030세대는 미래 대신 현재의 행복을 꿈꾼다. 외환위기와 만성적 불경기를 겪으며 'N포세대'라는 우울한 별명까지 얻은 그들이다. YOLO(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기치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원한다. 청년이 사는 도시 대구를 위해서는 청년이 행복한 대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하면 대구 청년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일자리, 양보다는 질이다
취업준비생 강태구(가명'28) 씨는 최근 취업 관련 포털 사이트에서 구인광고를 검색하면서 대상 지역 리스트에서 대구를 아예 빼버렸다. 연봉이 2천만원도 안되거나 파견계약직, 혹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기본급을 주며 영업 실적에 따라 수당을 지급한다는 등의 질 낮은 일자리들이 유독 많이 검색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강 씨는 "매년 일자리 몇만 개를 늘렸느니 하는 기사가 나오지만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라며 "나이가 차면서 여건만 괜찮다면 중소기업이라도 취업하려는 생각이 크지만 대구에는 내가 원하는 중소기업 일자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청년들은 일자리의 수보다는 질을 높이는 고용정책을 선호한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2월 전국 18~34세 청년 1천600명을 상대로 조사해 발표한 '2017년 청년고용정책 인지조사'에 따르면 선호하는 청년 고용정책으로 '일자리의 질 향상'이 57.3%(중복 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일자리 수를 늘리거나(42.8%), 비정규직 일자리의 정규직 전환(31.7%),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여 달라(30.4%)는 대답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의 조건으로 임금, 복지, 조직문화, 근로 여건의 네 가지를 꼽았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임금과 복지가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권위적이지 않은 조직문화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같은 조사에서 청년이 직장 선택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으로는 '임금과 복지 수준'이 38.3%로 가장 많았지만, ▷적성에 맞는 업무(20.8%) ▷적당한 근무시간과 업무량(9.4%) ▷근무환경'조직문화 및 출퇴근시간 준수(8.9%) 등 워라밸을 고려한다는 대답이 2~4위를 독식했다.
단순히 '일자리 X만 개 창출' 같은 치적 과시용 문구보다 실질적으로 지역 기업들을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로 상향평준화할 수 있는 청년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대구의 청년실업률은 전국 최상위권이지만 지역 중소기업들은 매년 인력난에 시달리는 등 '미스매칭'이 심각한 형편이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대구 사회문화 바꿔나가야
나이가 젊을수록 임금이나 회사의 미래보다도 '워라밸', 특히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선호한다는 점은 많은 현실을 시사한다. 대구 특유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권위적인 사회문화가 청년들을 떠나보내는 데 일조했을 수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실제 수도권으로 떠난 대구 청년들 중 일부는 "대구의 답답하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싫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대구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모 대기업 대구지사에서 일하던 최지현(가명'28'여) 씨는 최근 서울의 한 스타트업 회사로 이직했다. 연봉이 20%가량 깎였지만 비전이 있어 보였고, 특히 대구 특유의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막내인 내가 매일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해야 했고, 직무와 관계없는 모든 잡무를 담당해야 하는 등 부조리라고 느낄 부분이 많았다"며 "지금 당장은 봉급이 깎이더라도 보다 조직문화를 신경 쓰지 않고 직무에만 충실할 수 있는 회사를 찾다 보니 수도권 외에는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자유로운 발상과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문화예술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대구에서 독립문화예술단체 '인디공오삼'을 운영하는 이창원(38) 대표는 "대구의 문화기반은 나쁜 편이 아니지만 대부분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정통'주류 문화'에 머무르고 있다"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대구 청년들이 보다 자유롭고 신나게 독립문화예술을 꽃피우려면 실험적인 작품, 또는 실패한 작품이라도 용인해줄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청년 떠나는 도시'에서 '청년 돌아오는 매력적인 도시'로
전문가들은 청년이 돌아오는 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청년이 행복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자리의 양보다 질이 청년들을 끌어들이듯 도시의 질 역시 마찬가지이며 단순히 청년들에게 이런저런 혜택을 제공하는 청년정책을 마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구를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김요한 대구시 청년정책과장은 대구를 떠난 청년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열쇠로 크게 '일자리'와 '정주여건'의 두 가지를 꼽았다. 대구에 일하기 좋은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이에 더해 주택'문화'교통 등 도시 전반적인 정주여건에 매력을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김 과장은 "중장기적으로는 미래 산업을 육성하는 등 다양한 계획을 짜면서 단기적으로 각종 청년정책을 비롯해 문화시설, 교통시설, 집값 안정화 등 지자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대구를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창식 대구 청년센터 총괄실장은 "지역 청년들이 지역에 남을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라며 "단순히 일자리에 그치지 않고, 청년들이 '대구에 사는 일이 의미있구나'라고 느끼게 해줄 때 대구는 청년친화적인 도시가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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