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보듯이 보려느냐 宋氏(송씨)
세상에, 요 몇 년간, 뼈에 저린 가난으로 自歎年來刺骨貧(자탄년래자골빈)
정들었던 내 집조차 이웃 손에 넘어갔네 吾廬今已屬西隣(오려금이속서린)
뜰에 선 저 버들아, 어디 한번, 물어보자 殷勤說與東園柳(은근설여동원류)
앞으로, 설마 나를, 남 보듯이, 보려느냐 他日相逢是路人(타일상봉시로인)
근원(近園) 김용준의 전설적 수필집 '근원수필'(近園隨筆)에 인용되는 바람에, 제법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송(宋)나라의 조규(趙葵)가 편찬한 '행영잡록'(行營雜錄)에 이 시와 함께 좀 더 자세한 창작 동기가 수록되어 있다. "천태송씨(天台宋氏)는 원래 집안이 부유했다. 그러나 그 후 가난에 시달리게 되자, 살던 집마저도 이웃 사람에게 팔아먹어 버렸다. 흥정을 다 끝낸 뒤에 위의 시를 지어 읊었다. 집을 산 부자가 이 시를 보고 측은하게 여긴 나머지, 곧바로 집문서를 돌려주고 이미 치른 집값도 돌려받지 않으니, 고을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이웃 사람이 참 어지간하다. 세상에, 애틋한 시 한 편을 지었다고 해서 손에 쥔 집문서를 돌려주고, 이미 지급한 집값도 돌려받지 않았다니! 마음씨가 좋은 그 이웃에게 '참 착한 이웃 상'을 주고 싶다. '참 착한 이웃 상'을 받은 그에게 덩달아 우리 집도 팔아먹고 싶다. 애틋한 시 한 편을 짓기만 하면, 상까지 받은 그 착한 이웃이 응당 집문서를 돌려줄 테니까. 아아, 위대하다. 시의 힘이여!
오늘날 우리에게 집은 재산 증식을 위한 아주 중요한 수단의 하나다. 집값이 뛰어올라 대박을 터뜨릴 집을 골라서 사고, 쪽박을 차기 전에 얼른 팔아치운다. 그러다 보니 집 주소가 수시로 바뀌고, 살던 집에 대한 미련도 없다. 아파트 앞에 있는 버즘나무 때문에 차마 이사를 갈 수가 없다는 장옥관 시인은 이제 멸종위기 동물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들었던 집을 팔았던 송씨도 그만하면 어지간하다. 그에게 집은 아내와 첫날밤을 함께 보냈던, 이른바 역사의 현장이다. 3월 초가 되면 무려 만 송이의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저 백목련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심은 것이고, 감나무에 매달려 바람 부는 대로 왔다리 갔다리하는 것은 손자와 손녀들이 타는 그네다. 그러므로 이제 남의 것이 되어버린 집과, 그 집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참 애틋한 정이 없을 수가 없다.
그 가운데서도 송씨는 바람결에 가는허리를 이리저리 낭창거리는 수양버들을 유달리 사랑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들었던 집도 이제는 남의 집, 그 버드나무도 새로운 주인을 섬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나는 이제 저 버드나무에게 완전히 남이 되고 말았다는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그는 수양버들 아가씨의 옆구리를 찌르며, 은근한 눈길로 물어본다. 이제부터 나를 남 보듯이, 정말 남 보듯이 대할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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