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11분'/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4

마리아가 사랑한 첫문장

마네 작
마네 작 '올랭피아'

'11분'/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4

'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소설가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독자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모든 창녀가 그렇듯, 그녀 역시 순결한 동정녀로 태어났다.' 설마 코엘료가 그분(!)의 어머니인 그분(!)을 대상으로 소설을 쓰려는 것인가.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읽기를 멈출 수도 없다. 아니지. 코엘료라면 그럴'만두'하지. '…브라질 동북부에 있는 그녀의 고향 도시는….' 동명이인이다. 코엘료는 그런 도발은 하지 않았다.

소설은 브라질에 사는 마리아라는 여자의 성장을 통해 성과 사랑 그리고 뜻하지 않게, 롤러코스터와 같이 격렬했던 한 해의 삶을 이야기한다.

직물가게에서 일하던 평범하기 짝이 없던 이 아가씨는 모험과 돈, 혹은 남편감을 찾아 지구 반대편인 유럽의 스위스로 날아간다. 처음엔 삼바 춤을 추는 무희로, 다음엔 창녀라는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불행이 있다. 하나는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지게 되는 불행, 또 하나는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을 가지게 되는 불행.

'나는 세상의 제물일 수도 있고,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난 모험가일 수도 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볼 것인지에 달려 있다.' 스스로 절대 불행해지지 않겠다는 다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이 일을 하는 진짜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돈벌이의 수단인 '직업'을 통해 언제부터 성이 세속화되었는지 말함으로써, 그 민낯과 함께 본질까지 파헤친다. 여기서 '직업'은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말한 세 가지(노동, 작업, 행위) 활동 영역 중 마땅히 노동을 일컫는다. 그런데 유독 성을 행위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렌트가 정의한 '행위'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행위는 본질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인류, 우리 인간은 누구나 성적 경험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누구도 성행위에 대해 관심 있게 책을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분(!)은 아니었지만, 마리아의 이야기를 토대로 쓰인 책은 성에 대한 코엘료의 과감한 도발을 목격할 수 있는 책이다. 혹시, 성에 대해 낯가림이 심하다면 얼굴이 붉어질 수도 있다.

브라질행 비행기 표를 예약하던 날, 마리아는 모든 사람이 신뢰하는 돈 때문에 결국 자신이 돌아가기를 망설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산더미처럼 쌓인 돈을 들고 스위스 은행을 찾는다.

"이 돈으로 내 인생의 몇 시간을 살 수 있을까요?"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은행 직원은 자신들은 팔지는 않고 사기만 한다고 대답한다. 그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시간을 팔기만 한다. 소중한 육체와 영혼을 담고 있는 자신의 시간을.

3월, 어쩌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 될 시간이다. 올 한 해 우리는 각자 어떤 '사람책'이 될까? 첫 문장이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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