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매화가 필 때

매화는 춘삼월에 피웠다. 꽃 한 송이 피어날 때 그 꽃은 우주의 생명을 만들어 낸다. 봄은 달팽이처럼 더디고 느리다. 나무들은 서서 잠을 자고 있지만 성급한 개구리들은 연못에서 떼창으로 울었다. 바람은 어느새 겨울 산을 넘었다.

봄은 어젯밤에 보았던 별빛처럼 다시 돌아 땅 위에 복수초를 피우고 화단에 영춘화를 장식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바람은 아직 잠자는 꽃을 조심스럽게 깨우며 추위를 떨쳐내고 꽃송이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겨울나무들도 동안거를 마치고 잎 푸른 상록수들은 대부분 동상에 멍들어 있었다.

금년에도 영취산 통도사에서 혼자 수행하는 도반인 청강 스님이 카톡으로 봄을 보내왔다. 자장홍매가 만개하였다고. 작년 일기를 확인하니 2017년 2월 10일에 꽃이 만개했었다. 금년은 추위가 길어져서 20일 정도 늦게 피었다. 통도사 자장매는 수령 350여 년이나 되었다. 조사영각을 지을 때 나무도 함께 심었다. 통도사 개창주인 자장정율 스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자장매라고 명명한 것이다.

주변의 다른 매화보다도 빨리 피고, 꽃이 곱고 짙은 향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날도 모든 사람들은 사진기를 들고 나무 주위에 몰려 있었다. 물론 봄의 전령은 영춘화가 봄볕을 먼저 맞이했다.

선종과 함께 전래되었던 매화는 항벽 스님의 오도송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티끌세상 벗어나는 일이 쉬운 일 아니다. 화두 단단히 붙잡고 애쓸지어다. 찬 기운 한 번 뼛속에 사무쳐야만, 짙은 매화향을 얻을 수 있으리요."

가까운 통도사 매화는 절경이다. 법당 앞마당에 홍매화가 만발하니까, 야위고 마른 선암사 담장의 70그루 터널 풍경들과 구례 화엄사의 추녀와 푸른 하늘이 맞닿은 듯 눈이 부시고 시려서 누구나 도취되게 하는 것이다.

매화는 그 생태적 특성이 장미과 낙엽수로 추운 겨울을 이기며 꽃을 피우는 오래 사는 나무이다. 중국의 700년 찰미과와 일본의 400년 수령의 와룡매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600년의 선암매와 정당매가 고매로 남아 있다.

범성대는 "매화나무는 천하에서 으뜸가는 꽃으로 지혜롭거나 어리석은 사람 그리고 어진 사람과 어느 사람도 매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매화를 그리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몸은 늙어서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듯하며, 둘째는 굵은 나무가 뒤틀려 기괴하여야 하며, 셋째는 쇠처럼 곧은 가지가 맑아야 하며, 넷째는 어린 가지는 튼튼해야 하며, 다섯째는 꽃이 기이하고 아리따워야 한다"고 하였다.

매화나무를 자르지 않는 바보와 벚나무를 자르는 바보가 있다고 한다. 매화는 적당히 잘라주어야 나무가 잘 자라고, 벚나무는 가지를 자르게 되면 그 자리가 썩어들어가기 때문에 잘 자르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설중 삼우인 매화, 동백, 수선화 가운데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3월에 오는 비는 매우(梅雨)라 한다. 5월에 오는 비는 송매우(送梅雨)이다. 매실이 노랗게 익는 6, 7월에 오는 비는 황매우(黃梅雨)라고 한다.

매화 가지에 앉은 새가 향기를 듣는 매조문향은 한 차원 높은 문향을 말하기도 한다. 봄을 기다리며 눈 내리는 날 탐매는 매화를 찾아가는 심매의 길이다. 그림으로는 조희룡의 '매화서옥도'가 있다. 그는 매화를 좋아해서 자신이 그린 병풍을 치고, 벼루에 벼루시를 새기고 먹에 매화를 사용하며, 매화시를 즐겨 낭송하였다.

목이 마르면 매화 차를 달여 마셨다. '진기'의 '매화초목도'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눈 덮인 하얀 초당에 문 열어 놓고 찾아올 친구를 기다리는 훈훈한 풍경이 묻어나는 그림이다. 봄의 산뜻함과 즐거움이 느껴진다.

오늘날, 지리산을 지나서 남쪽 섬진강의 섬진마을의 드넓은 10만 그루 매화 숲과 해남의 보해매실 농원, 그리고 칠곡 송광설중매원 등은 매실 산업과 탐매하기 좋은 매화 마을이 되었다. 선암사 매화 터널과 화엄사 원통사전 사이의 매화는 붉고 고혹적인 풍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게 하는 곳이다.

매화를 찾아가는 발길에는 조심스럽게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의 봄이 되고 싶다.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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