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교육계의 '미투'

최근 한 달간 우리 사회를 뒤덮은 것은 권력형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 열풍이다. 지난주에는 남북정상회담 발표라는 중대한 뉴스조차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로 이 열풍의 위력은 엄청났다. '미투'(me too)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나도 당했다'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어감도 좋지 않을뿐더러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me too'를 그대로 번역하면 '나도 (그렇다)'이다. 이 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누군가가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미투'의 시작은 미국의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로부터 시작되었다. 거기에서부터 여성들이 '미투'를 한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당했다'라고 번역을 한다면 지금까지 '미투'를 외친 여성들이 모두 와인스틴에게 당했다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으므로 적절한 번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투'는 권력을 가진 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여성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한 연대의 표시이자, 자신도 용기를 내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폭력,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용기이다. 또 '미투'는 직접적으로 당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권력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권력의 억압이나 자신에게 가해질 불이익 때문에 침묵해야 했던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미투'가 하나의 운동으로 번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약자가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미투'는 '나도 당했다'보다는 '나도 말할 수 있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속해 있는 교육계는 지금 '미투' 폭풍 전야이다. 문화계, 정치계 유명인들의 사건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고 주로 남성이 권력을 가진 환경, 공사 구분이 불분명한 온정주의 문화가 만연한 교육계의 특성을 감안하면 교육계에서 터져 나올 '미투'의 규모는 지금까지 나온 '미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친목회 여행 가서 술 먹고 추태 부리는 정도는 학교들마다 워낙 흔해서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지금까지 교육계 성폭력 사건들을 보면 가해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피해 여성을 챙겨 준 친근한 사이라고 생각해서 여성을 함부로 대한 경우가 많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관리자로서 근무평정을 하거나 교육청 사업의 담당자로 있으면서 자신이 힘을 썼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일도 안 했는데 높은 평점을 받아 원하는 학교에 발령을 받거나, 능력이 안 되어도 중요한 경력들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누군가는 부당하게 원치 않는 학교에 가야 하고, 능력 있는 교사가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투'의 끝은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길, 바로 공정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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