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 바꾸는 계기돼야"

대한민국 뒤흔드는 미투운동

'세계여성의 날'인 8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대구여성대회' 참가자들이 '미투(Me Too) 위드유(With You)' 피켓을 들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Too'나도 성폭력을 당했다) 운동'의 대상이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면서 시민들의 심리적 허탈감도 커지고 있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던 영화감독 김기덕,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시인 고은뿐 아니라 배우 조재현, 연극 연출가 이윤택 등 저명인사들의 숨겨진 민낯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사회적 롤모델들의 추악한 이면을 목격하며 배신감과 공허함을 호소하고 있다.

◆저명인사들마저…'신뢰 무너져 충격' 호소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이 폭로되면서 촉발된 미투 운동은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힘을 받기 시작했다. 법조계와 문화예술계 유력 인사들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폭로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용기를 얻은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 폭로에 동참했고, 가해자들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들이 평소 대중에게 드러냈던 긍정적 이미지와 신뢰가 한순간 무너지면서 충격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안희정 전 도지사를 지지했다는 최모(27) 씨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다.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손창규(28'대구 북구) 씨도 "남자인 내게도 안희정 전 지사의 성추문은 충격이었다. 믿고 지지했던 정치인이 비서에게 그런 일을 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저명인사들의 추악한 민낯은 중장년층에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박모(59'남구 대명동) 씨는 "도덕적으로 깨끗해 보이던 인사들의 행태는 가히 충격적이다. 믿었던 만큼 실망도 크다"며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음을 새삼 절감했다"고 했다. 오중식(80) 씨도 "처음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를 폭로했을 때만 해도 젊은 여자가 어쩌려고 저런 얘기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이후 연일 성폭력 폭로가 나오면서 명예도 높고 돈도 잘 벌던 양반들이 왜 그런 짓을 했나 싶어 괘씸하다"고 했다.

여성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이 공공연했다는 게 이유다. 김지연(26) 씨는 "예전에 일식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 사장이 수시로 내 엉덩이를 만져 일을 그만둔 적이 있다. 그 업주만 재수 없는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유명 배우들조차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걸 알고 보니 사회 전반에 성폭력이 만연한 것 같다"고 한숨 쉬었다.

◆"믿음 깨진 반작용 커. 인권 감수성 강화 계기 될 것"

전문가들은 믿음과 희망이 깨진 데 대한 반작용이 사회를 흔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에는 성폭력을 자신과 동떨어진 '특정 집단'의 행태로 여겼지만 친숙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아끼고 지지했던 믿음과 가치관까지 배신당한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장진이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이 큰 실망과 좌절을 느끼고 나면 분노, 허탈감을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가령 차기 대권 후보로 꼽혔던 안희정 전 지사의 이면을 본 시민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리더가 사라지고 희망을 잃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해자가 권력적 지위를 이용해 민주사회 개인의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시민 누구나 피해자의 심리에 공감하는 동시에 허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미투 운동이 남성중심적 사회구조를 바꿀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인권 감수성이 매우 낮았고 사소한 성적 농담은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도 강했다"면서 "미투 운동을 계기로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 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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