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을 읽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수십 년 전 사람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이 많아 따로 호칭을 정하지 않지만 1920, 30년대에는 일하는 여성을 '직업부인', '직업여성'으로 불렀다.
직업을 가진 여성에 대해서 당시는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1939년, 여성은 '가정부인'과 '직업부인'으로 나누어 불렀다고 한다. "부인의 직업은 첫째 사회봉사, 둘째 경제 독립이며 이 두 가지가 없는 여성 직업은 여성을 위하여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못 박는다. 부부가 함께 노동한 여자는 아이 낳는 비율이 낮고 어린아이 사망률이 높고, 생존한 아이도 발육이 나쁘다고 함께 보도하고 있다.
좀 더 앞선 1936년 신문(1936년 2월 20일 자)에는
"여성이 생활의 절실한 필요 때문이 아니고 단지 직업여성으로서의 자유와 독립을 동경하여 가정생활을 기피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여간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한다. "직장에는 가정보다 여러 가지 유혹이 있어 장래를 그르치게 함을 흔히 보니, 직업여성 자신이 특히 행동과 언어와 의복에까지 심심한 주의를 해야 할 것은 물론이요 가정에 있는 부모도 또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1939년 신문에도 직업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드러난다. "직업여성은 가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경제의 관념이 적다, 외출을 좋아한다, 애정이 엷다, 제 마음대로 하려 든다, 사 먹기를 잘한다, 극장 같은 데 구경을 좋아한다, 거짓말이 비교적 많다, 교양이 부족하다."(동아일보 1939년 9월 25일 자)는 실소를 금치 못하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당시 직업을 가진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26년 일본 내무성 중앙직업소개사무국은 동경과 대판에 있는 직업부인 8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동아일보 1926년 5월 6일 자) 첫째,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들의 인격적 경시, 둘째, 남자들은 여자의 인격보다 얼굴의 아름답고 추한 것을 따라 차별한다. 셋째, 같은 학력, 같은 시일에 들어가더라도 남자는 많은 보수를 받고 여자는 적은 보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자도 같은 사람으로 대해 주었으면 한다'고 적고 있다. 당시 일본의 여성과 사회적 지위가 더 낮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여성들은 이보다 더 열악했을 것이다.
미투 운동이 한창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1920년대 여성들이 당했던 고통이 오늘날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자기들의 어떠한 감정 요구에 대하여 만족을 주지 아니하고 거절하는 때는 부당한 질책을 받고 돌아서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은 100년 전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분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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