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55)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1980년대 중반 대학가의 주체사상 교범이었던 '강철서신'의 작가로 국내에 주사파 이론을 처음 소개했다. 1991년 5월 북한 공작원이 몰고 온 잠수정을 타고 방북, 김일성을 이틀에 걸쳐 6시간 동안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실상을 확인한 뒤 북한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
국내의 대표적인 친북 인사에서 강력한 반북 인사로 변신한 셈이다. 12일 대구를 방문한 김 연구위원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 전망과 향후 남북 관계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비핵화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김정은의 의도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실제론 핵 포기 의사가 없으면서 대북 제재를 모면하기 위한 시간 벌기용이거나 실제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거나 두 가지다. 개인적으로 후자에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미국의 대북 폭격 가능성이나 제재로 북한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현실적으로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검증에 한계가 있는 만큼) 이스라엘처럼 국제사회가 핵무기 보유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도록 한 뒤 암암리에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할 것으로 본다"며 "그 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4% 수준인 국방비를 축소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사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남북 간의 진정한 관계 개선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 지도부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크게 환영하지 않는다. 간부들의 부패가 심해 남측 인사들에게서 뇌물을 받아 챙기는 경우가 적잖다. 북한 지도부는 남한의 공작비가 뇌물로 둔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개성공단 폐쇄 이후 북중 무역이 활성화돼 중국 투자가 많아졌고, 북한 노동자들을 수출해 버는 돈이 개성공단 수입보다 많아졌다. 국내 기업 투자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김정일은 체제 유지를 위해 권력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개혁'개방 등 모험적 시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젊은 탓인지 모든 분야에 적극적이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1, 2년 주기로 시장에 대해 탄압'이완 정책을 폈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보호 정책을 펴고, 국가와 자본이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농업 개혁에도 그 나름 성과를 거뒀다고 진단했다. 그는 "김정은 집권 후 집단농장에서 가족농으로 바꿨고, 그 결과 370만~400만t 수준이던 곡물 생산량이 2014년 이후 500만t까지 늘었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남북이 민주주의, 인권 등에서 인식 격차가 너무 커 화합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도 있다. 근대화 경험이 없는 탓에 김씨 세습 체제가 잘못됐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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