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복 고수 기술 내 것으로
손님 체형 알려 같이 목욕도"
기성복 유행에 사업 접을 위기
가게 줄이고 연구하면서 '돌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면 철이 빨리 든다고들 했다. 먹고살기 위해 셈이 빨라져 대개가 그렇다는 것이다. 조실부모한 김칠규(59) 구미 VIP양복점 사장의 삶도 그런 철듦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았지만 별난 게 하나 더 있다면 위기가 끊이지 않았고 그 위기에 제법 지혜롭게 올라탔다는 거였다.
1981년 군 입대 전까지 배워둔 양복 기술이었다. '김칠규'라는 이름을 걸고 1986년 문을 연 가게는 호황을 누렸다. '바빴다'는 말이, 덜도 말고 가장 정확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부터 하향 곡선 을 그렸다. 기성복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반도패션이나 제일모직 등 대기업에서 나온 기성복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양복장이들의 밥숟가락을 빼앗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밥그릇마저 냅다 차버렸다. 가게 문을 닫는 곳이 속출했다. 기성복이 처음 나오고 10년 사이 양복점의 80% 이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김칠규 씨도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이때가 그의 삶을 바꾼 순간이었다. 고민의 핵심은 몇 줄로 요약됐다. '사람이 옷은 입어야 하니 틈새시장이 있을 것이다. 양복 정장은 개성에 따라 다 다른데 어떻게 기성복이 시장 전체를 석권한단 말인가. 소매를 길게 입는 사람, 맞게 입는 사람 등등 다 다르다. 지금은 소나기다. 유행이 중요한 게 아니다.'
"분명히 맞춤 정장을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어요. 위기가 왔으니 우선 가게 크기를 줄였어요. 저절로 구조조정이 되더군요. 같이 일하던 10명을 떠나보냈죠. 일하느라 못했던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패턴과 봉재,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책으로 익혔어요. 나이 탓에 일을 쉬고 있던 기술자, 고수들을 찾아가서 배웠어요. 무림의 고수를 찾아가 배운 셈이죠. 1인 1기술이 있거든요. 기어이 찾아가고 배우려 드니 기술을 내놓더라고요."
강호의 고수를 찾아 '도장깨기'처럼 기술을 익히길 10년.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리면 될 것 같지만 그건 우리의 주인공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흐름이었다. 김칠규 씨는 손님을 찾아다녔다.
"손님과 맨투맨으로 이야기하며 개성을 파악해야 해요. 알몸을 벗길 순 없잖아요. 심지어 같이 목욕하면서 체형 파악을 하기도 했어요. 목표가 있으면 찾아 들어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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