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어느 단체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 말미에 "형사적인 문제가 생기면 경찰 조사 단계에서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불리한 진술을 다 해놓고 재판까지 넘어가서 변호사를 찾아오는 분들이 많은데 변호인 선임이 늦어질수록 불리해집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그런 일 안 겪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니까 사람들과 다툼이 생기더라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사이좋게 지내시기 바랍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어느 중년의 남성 분이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양보하고 사이좋게 지내면 변호사들이 할 일이 없어지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면 판사, 검사, 변호사는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예상 못한 질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예,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변호사는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그런 세상이 올 수만 있다면 저는 기꺼이 전직을 하겠습니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답을 했다.
사실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세상은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오지 않을 것이란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의 이기심이란 것은 사람 그 자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으로, DNA에 깊이 각인된 것이니까.
사람들은 이기심 때문에 싸운다. 어제도 싸웠고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울 것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싸우지만 한국 사람들은 유독 더 격렬하게 싸우는 것 같다. 일반 국민들은 남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지려고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가려고 처절하게 싸운다. 정치인들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정권을 잡으면 권력을 독점하려고만 한다.
사람의 이기심으로 인한 싸움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불가피한 현상이겠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서로 싸움을 멈추고 힘을 합칠 줄 알아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런 협심이 참으로 요원해 보인다. 이념 갈등, 지역 갈등, 종교 갈등, 빈부 갈등 등 우리 사회에는 갈등만 가득할 뿐 이 갈등을 중재하고 녹여내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낼 그 어떤 지휘자도 없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왕도, 종교지도자도, 국가적 이념도 없다.
우리 국민이 하나가 되는 순간은 딱 두 경우뿐이다. 한'일전 스포츠 경기가 벌어질 때와 IMF와 같은 국가적 위기가 왔을 때가 그것이다. 한'일전 축구나 컬링 경기가 열릴 때 우리 국민은 하나가 되어 응원한다. IMF 당시 우리 국민들은 집에 있는 작은 반지까지 꺼내어 금 모으기 운동을 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IMF 체제를 벗어나자 또다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처절한 싸움만이 남은 것이다. 우리는 내 집값, 땅값만 오르면 나라야 어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배금주의, 극단적 이기주의로부터 자유롭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중국이 잠자는 짧은 기간에 기적적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을 키워냈지만, 이제는 중국 기업들이 전방위적으로 우리 수출산업을 잠식하고 있다.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젊은이들에게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 되었으며, 출산율은 세계 최하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무 자체가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중국의 기술력에 밀려 수출 경쟁력을 상실할 때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은 뿔을 맞댄 소처럼 치열하게 싸울 때가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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