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에 사는 권중섭(80) 할아버지는 평생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다. 젊은 시절 군대에서 결핵 치료를 받다가 부작용으로 듣지 못하게 된 탓이다. 할아버지가 청력을 잃은 건 지난 1959년. 육군 1군단 통신병이던 그는 경기도 가평군에서 선로 보수작업을 하던 중 전봇대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했다. 할아버지가 이후 시름시름 앓자 부대 한 상급자는 집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라고 휴가를 내줬다. 할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와 '늑막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당시 결핵 치료제로 쓰이던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을 처방받았다. 얼마 후 부대로 복귀한 할아버지는 육군 59양평 야전병원에서 '폐결핵'과 '결핵성 늑막염'이란 진단을 받고 결핵 치료를 계속했다.
그러나 결핵 치료제를 맞을 때마다 귀가 멍하거나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심지어 귀에서 고름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이듬해 1월 의가사 제대했다. 당시 결핵치료제로 널리 쓰인 스트렙토마이신은 귀속 달팽이관이나 청신경 등에 손상을 입히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부작용에 대한 적절한 조치나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잃어버린 청력으로 평생을 가난에 시달린 할아버지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4차례에 걸쳐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투여기록이 7회에 불과하고 발병경위를 설명할 구체적이고 객관적 자료 및 의학적 소견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기각했다.
좌절했던 할아버지가 잠시나마 희망을 본 때도 있었다. 지난 2016년 대형 로펌이 할아버지의 무료변론에 나선 덕분이다. 여성 최초 장군 출신인 이은수 변호사는 병상기록 등을 통해 할아버지에게 처방된 스트렙토마이신이 석 달 동안 26차례에 달하고, 유전적으로 취약한 경우 더욱 심각한 청력 상실을 일으킨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러나 법원은 할아버지의 청력 장애가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어느 정도의 청력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증명할 자료가 없고 현재 청력을 상실한 건 그동안 제대된 치료를 하지 않은 게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1월 2심 재판부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다만 "군의관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요건이 될 수 있다"며 국가 책임을 물을 여지를 남겼다. 이은수 변호사는 "약물 부작용에 대해 당시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며 "소멸시효 등 증명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국가의 책임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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