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 칼럼] 북 비핵화에 지름길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의 이중성은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 3대를 이어온 원조 공산주의와 상대하고 있다.

6·25전쟁은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남침에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맞붙은 전쟁이었다. 찰스 터너 조이 미 해군제독은 1951년 7월 첫 정전회담부터 10개월여 동안 유엔군 측 수석대표로 공산주의와 협상에 나섰다. 이 기간은 그에겐 공산주의에 넌더리를 내게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북은 고비마다 '죄 뒤집어씌우기', '나쁜 놈 내세우기', '발뺌하기', '상대방 제의에 역제의로 시간 끌기' 등 온갖 전술을 구사했다. 그 치밀함과 집요함, 끈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훗날 그는 자신의 저서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에 이때 얻은 교훈을 낱낱이 기록했다.

첫 번째를 보자. '적이 휴전을 원할 때 압박을 늦추지 말라'. 공산주의자들은 상대방이 양보하면 자신들도 양보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약하다는 신호로 본다. '공산주의자에게 1인치를 양보하면 1마일을 얻으려 한다'는 말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는 이를 막기 위해 '공산주의자와의 약속은 믿지 마라, 오직 행동만 믿으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주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후 공산주의와 협상에 나섰던 많은 사람들이 이를 확인하고 있다.

1994년 북한과 미국이 각각 핵사찰 허용과 경수로 제공을 약속했던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북핵대사의 "(최근 북과 관련한 일련의)회담이 성공적이기를 바라지만, 내 돈을 성공에 걸지 않겠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북은 제네바 합의를 하는 순간에도 비밀리에 파키스탄과 접촉해 원심분리기와 우라늄 농축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유다. 지난 24년간 북핵 문제를 다뤄온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그동안 "북과 모두 8차례 합의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우리는 똑같은 영화를 너무 여러 차례 보고 있다"고 빗댔다. 그동안 북은 네 차례 핵개발을 안 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키지 않았다. 만든 핵을 폐기하겠다고도 4번 약속했다. 이 역시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클링너의 말은 이를 두고 나온 것이다.

정부가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과거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의 역사를 얼마나 공부했는지 의문이다. 청와대에선 오히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란 비유를 내놨다. 이는 아무도 풀 수 없다는 매듭을 아시아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가 단칼에 잘라 풀었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서두르고 있다는 인상을 갖기에 충분하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핵과 평화협정 체결 등 현안을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욕심이 묻어난다. 공산주의와의 협상에서 서둘면 필패다.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엔 지름길이 있을 수 없다. 하나를 받고 하나를 내어주는 거칠고 험한 길이 놓여 있을 뿐이다.

반면 미국은 당근과 채찍을 확실히 하고 있다. 5월 북미 정상회담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면서도 '북미가 만나 날씨 이야기라도 하자'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그 자리엔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CIA국장을 지명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강경파를 전면에 포진시켜 대북 압박 기조를 한껏 고조시키는 모양새다. 이쯤 되면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이거나 과거에서 배우는 사람이다.

조이 제독의 가르침이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에서 우리가 무력 사용 가능성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은 절대적 금물이다. 오히려 무력 사용이 임박했다는 위협을 실감할 때라야 그들은 양자 간 핵심 쟁점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협상에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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