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버텨야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내과 중에서도 소위 '3D(dirty, difficult, dangerous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분야'가 소화기 분야다. 소화기 쪽 중에서도 특히 췌담도가 힘들다는 게 의료계의 얘기다. 몸을 많이 써야 해 육체적으로 힘들고,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도 길다. 환자들의 예후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곳을 지키는 이가 김국현(48) 영남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다.
김 교수의 별명은 '철인'. 체력이 좋고 인내심도 많다. 그에게 잘 어울리는 전공을 택한 셈이다. 김 교수는 "손이 크고 덩치 좋은 의사가 췌담도를 다룬다고 하면 '역시'라고들 농담을 한다. 그만큼 힘든 분야다"며 "수련의가 감당하기 힘든 분야라 응급 환자라도 생기면 뛰어가야 한다. 취미는 잠이다. 시간이 나면 자면서 체력을 비축한다"고 웃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찾은 의사의 꿈
김 교수는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결국 그는 경북대 자연과학대에 88학번으로 입학했다. 웃음기 띤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하던 김 교수는 "아버지께선 의대에 가면 고생한다고 말리셨다. 집사람과 아이들만 편하다고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공교롭게도 병원에서 근무하게 됐다. 공부를 할 시간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가까이서 진료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의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제대 무렵 입학시험을 잘 치렀고, 제대한 이듬해 바로 영남대 의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94학번으로 의대에 입학했다. 6년 늦게 학교에 들어오다 보니 의대 동기 가운데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다"며 "그래도 군 복무를 마치고 온 터라 6년 차이가 아니라 실제론 3년 정도 격차가 나는 셈"이라고 했다.
췌장암 등 김 교수가 주로 다루는 암은 이른바 '불량한 암'이다. 환자 자체가 많진 않지만, 일단 발병하면 생존율이 낮다. 그 역시 환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김 교수는 "위암, 대장암 환자들과 달리 내 환자들은 1년만 지나도 안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래 살아주셨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럴 때 위로가 되는 건 동료다. 췌담도는 어려운 분야라 의사들이 잘 맡지 않으려 한다. 대구 대형병원을 통틀어 이 분야를 다루는 의사는모두 더해봐야 10명 남짓이다. 김 교수는 "다른 의사들이 느끼기 힘든 감정을 일정 부분 공유한다. 묘한 동료애라 할 수도 있겠다. 한 번씩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애환을 나눈다"고 했다.
◆높지 않은 생존율과 싸우는 의사
김 교수가 다루는 췌장암, 담낭암, 담도암은 발병률이 낮지만 치명적인 암이다. 이들 세 암은 모두 일반 내시경으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췌장, 담낭, 담도 모두 몸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CT를 찍어야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초기에 특별한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아 이미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병원에 오는 환자가 많다.
치료도 쉽지 않다. 췌장암만 해도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술뿐. 게다가 수술이라도 가능한 경우는 환자 가운데 20% 정도에 그친다. 수술을 해도 5년 뒤 생존율이 약 5%에 머문다.
김 교수는 "췌장암 진단이 내려지면 환자들에게 평균 1.5년을 넘기기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꼭 해야 하는 말이지만 할 때마다 참 힘들다. 그러나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그래도 시술이 잘 돼 환자의 통증이 크게 주는 경우를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영남대병원 간담췌센터는 이들 암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다학제 진료(여러 진료과 전문의가 모여 진료하는 것)가 이뤄진다는 게 이곳의 장점이다. 내과, 외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의료진이 매주 한 차례 모여 실제 사례를 두고 치료 방법을 고민하고 의견을 교환한다. 그 덕분에 검사, 진단, 치료 등 절차를 거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분야인 건 사실이다. 치명적인 합병증을 수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더 어렵다"며 "그럴수록 똑똑한 학생들이 많이 이 분야에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분야가 더 발전하고,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김국현 교수
▷1970년 안동 출생 ▷2000년 영남대 의대 졸업 ▷2001~2006년 영남대병원 내과 수련 ▷2006년 영남대병원 소화기 전임의 수련 ▷2007~2012년 차의과학대학 소화기내과 조교수 ▷2014년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우수논문상 수상 ▷2015~2016년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연수(내시경초음파 및 췌장암 관련) ▷현 영남대 의대 소화기내과 부교수 ▷현 대한췌담도학회 교육위원회 위원 ▷현 대구경북소화기내시경학회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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