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봄이 왔나 보다. 환자분이 이제 막 핀 개나리를 꺾어서는 플라스틱 컵에 꽂아 나에게 주며 봄꽃이 반가워서 꺾어 왔단다. 출퇴근길 예사로이 봐 넘기던 길목에 꽃이 핀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하긴 얼마 전 내린 눈이 말갛게 씻긴 뒤, 나뭇가지들이 유난히 생기가 넘치는 듯했었다. 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더욱 흥미로운 것이 꽃인 것 같다. 앙증맞은 들꽃의 이름을 알아내고, 색감을 느끼고, 거기다 꽃말까지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꽃이다.
봄 문턱에 우리 집 거실에 가장 먼저 오르는 꽃은 단연 '프리지어'다. 해마다 설 이튿날 어머니 생신이면 아버지와 '프리지어' 다발을 사 들고 왔던 어릴 적 기억이 내가 꽃을 좋아하게 된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꽃에 관심을 가지다가 어머니께 꽃다발을 직접 만들어 드릴 요량으로 '꽃 핸드 타이'(Hand tie)를 배우기도 했다. 느슨한 꽃다발을 돌려가며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는 '스파이럴' 기법을 이용하여 풍성한 꽃다발을 만드는 것이다. 직접 어울릴 법한 꽃을 고르고, 잎 부분을 다듬고 길이를 고르게 맞추어 완성한다. 나의 첫 꽃다발은 예쁜 꽃봉오리가 있는 리시안서스와 라넌큘러스를 주재료로 하고, 안개꽃과 비슷한 마조리카를 이용하여 꾸몄다. 꽃만 있으면 허전하기 때문에 아게라툼과 유칼립투스 가지를 장식 삼아 집어넣어 풍성하고 균형감 있는 꽃다발을 만든다. 미색 종이와 리본으로 포장하니 그럴싸한 작품이 완성됐다.
꽃을 배우러 간다는 나에게 남자가 무슨 꽃이냐던 친구들도 완성본을 보여주자, 자신들도 연인에게 해주고 싶다고 난리다. 꽃들을 엮으며 유치원 다니던 봄날 잔디밭에 핀 작은 꽃을 꺾어, 마음에 둔 여자친구 손목에 매어주었던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요리를 하러 다니면서는 길가에 핀 꽃이 온통 식재료로 보였다. 장미 같은 붉은 계열의 꽃은 메추리 요리와 어울리고 호박꽃같이 공간이 있는 꽃은 속을 채워 튀김 요리를 하면 그 맛이 일품이다. 이렇게 꽃은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추억으로도, 음식으로도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기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꽃을 노래하고 그림으로 그렸나 보다.
정성껏 만든 꽃다발을 어머니께 드렸을 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들의 이벤트에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으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린다. 의미를 두어 꽃을 주는 사람도 의미를 새겨 꽃을 받는 사람도 그리고 꽃이 존재하는 장소에도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게 되니, 그것이 꽃이 가지는 가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주고 기쁜 날 또는 슬픈 날, 처음 시작하는 날 그리고 끝맺는 날에 꽃으로 마음과 공간을 장식한다.
오늘 진료가 마무리됐다. 나 스스로에게 꽃을 받을 만한 날이었는지, 꽃을 주고 싶은 사람은 없었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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