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비운의 은메달리스트 김보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낳은 최대 비운의 주인공은 김보름일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영광스러운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온몸으로 떠안았다. 여자 팀추월 예선 경기에서 빚어진 '노선영 왕따 주행 논란'은 그의 창창한 삶 전체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25세 젊은 여성이 안고 가기에는 너무 버겁다. 그와 뒷바라지한 어머니가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논란이 된 경기 당일 TV 중계가 끝난 뒤 기자는 20대 후반의 아들과 김보름의 플레이를 놓고 때아닌 설전을 했다. 김보름의 페어플레이 실종을 지적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스포츠 논리로 김보름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꽤 오래 언쟁을 했다.

당시 TV 카메라에 담긴 경기 장면과 노선영의 골인 후 울먹이는(?) 모습, 중계 캐스트와 해설위원의 격앙된 질타, 김보름의 인터뷰 태도는 경기 전후의 사정을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쳤다. 언론 뉴스와 짧게 편집돼 SNS로 퍼진 영상은 국민적인 공분으로 이어졌고 역대 최고인 6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낳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사태 초기 단계부터 김보름을 두둔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김보름의 인터뷰 태도에 문제가 있었지만, 전후 사정을 들여다보면 억울한 점이 많다는 반론이었다. 소신을 밝힌 기자들은 기사 댓글 등을 통해 김보름 못지않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

스포츠 현장을 오랜 기간 누빈 기자의 경험상 김보름의 처지를 반영한 이들은 올림픽이란 스포츠 자체로 경기를 봤다. 인터뷰는 개인적인 행동으로 보고 판단의 비중을 낮췄다. 김보름은 세계 최고 선수들만이 참가하는 올림픽의 0.1초를 다투는 종목에서 최선을 다해 질주했다. 3명으로 짜인 팀의 맨 앞에서 홈그라운드 팬들의 열광적인 함성 속에 온 힘을 다해 스케이팅했다. 골인 지점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했고, 막내 박지우는 처지지 않고 따라붙었다. 다만 언니 노선영은 훈련 부족 등으로 뒤처졌다. 노선영이 후배들을 제대로 따라왔다면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이게 경기 상황이다.

팀추월이란 경기의 특성을 들며 왜 함께 들어오지 않았느냐는 게 논란의 근거 중 하나인데 이는 해석의 차이이다. 정확한 해석도 아니다. 앞선 대회에서 노선영이 먼저 들어온 일도 있었고, 다른 팀의 경기에서도 이런 모습은 있었다.

무엇보다 3명이 사이좋게 나란히 골인한 팀추월 순위 결정전의 기록은 왕따 주행 논란을 일으킨 예선 때보다 더 좋지 않았다. 메달을 따려고 4년을 준비한 올림픽에서 전력 질주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김보름이 일방적으로 비난받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김보름이 매스스타트에서 투혼을 발휘하며 은메달을 획득하고, 일부 언론을 통한 노선영의 여론몰이 등 전후 과정이 확인되면서 상황은 확 달라졌다.

김보름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스포츠를 보는 우리 국민의 수준에 문제가 있다. 엘리트나 프로 스포츠는 경쟁과 돈이란 도박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기에 관객들은 대리 만족을 추구한다. 또한 기록과 결과를 점치며 자신과 싸움을 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간 경쟁을 하는 메이저대회에선 애국심이란 요소가 추가된다.

이 때문에 스포츠를 냉정히 보기는 쉽지 않다. 전문 기자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춤을 추곤 한다. 김보름 논란은 TV 중계와 영상을 본 관객의 순간적인 감각에 의해 빚어진 사태다. 이를 유발한 언론의 잘못이 크다.

막무가내식 언론 보도와 마녀사냥 같은 철부지 국민청원, 냄비 근성은 익명의 온라인시대를 맞아 악화일로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국민성으로 대변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허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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