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人&스토리] 연극 '장수상회' 대구 공연 배우 신구

'꽃보다 할배' 실제 내 모습…팔순에 현역 비결은 하루 1시간 운동

연극
연극 '장수상회' 대구 공연 배우 신구.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배우 신구 선생과 한상갑 기자가 인터뷰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배우 신구 선생과 한상갑 기자가 인터뷰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줄 '운명의 작품'을 꿈꾼다.

변두리를 전전하던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톱스타 반열에 올랐고 무명의 오정해는 '서편제' 한 편으로 국민 국악인이 되었다. 사례가 워낙 드물어 3대가 덕을 쌓거나 하늘이 감읍(感泣)할 정도의 내공을 쌓아야 겨우 이런 기회를 잡는다고 한다.

간혹 이 천기(天機)가 엉뚱한 데서 터져 한 연예인의 운명을 바꿔 놓기도 한다. 배우 신구(81)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30년 인기 배우였지만 그를 톱스타로 '격상'시킨 건 2002년 한 편의 CF '니들이 게 맛을 알어?'였다. 물론 연기에서 이미 완숙기에 접어들어 있었고 스타 대열에도 올라 있었지만 이 '8자' 카피의 도움을 받아 단숨에 국민배우 반열에 들 수 있었다.

연극 '장수상회' 공연차 대구에 들른 '구야형'을 봉산문화회관 대기실에서 만났다.

◆서울대 상과대학 꿈꾸던 우등생

그의 이력과 관련해 독특한 기록이 눈에 띈다. '조선 경기도 경성부 아현정(阿峴町)'으로 된 주소다. 사실은 이상할 것도 없다. 1936년생이니 일제강점기 때 태어났다. 태어나 보니 식민지 치하였고 그냥 그 시절을 살았던 것이다.

학창시절 그는 서울대 상과대학을 꿈꾸던 꽤 우수한 학생이었다. 다니던 학교가 경기고(52회)였으니 그 시절 경기고는 전국 수재들의 집합소였다. 고건 전 국무총리,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등이 동기생이다.

목표로 했던 서울대 입시에서 떨어지고 후기였던 성균관대 문과대에 합격하면서 국문학도가 되었다.

정'재'관계에 한국 사회를 움직였던 동문들이 포진해 있어 5, 6공 무렵에 정치 권유도 많았다. "당시 기라성 같은 친구들이 권력의 핵심에 있었어요. 마음만 먹었으면 정계나 문화계에 갈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내 옷'이 아니고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접었어요."

◆4세에 연극 출연, 타고난 무대 DNA

신구는 불과 4세에 연극 무대에 섰을 정도로 배우 DNA를 타고났다. 1962년 연극 '소'에 출연하면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7년 후 서울중앙방송(현재 KBS)에 배우로 특채되면서 본격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명의 신구를 스타로 데뷔시킨 작품은 1972년 '허생전'이었다. 그는 예명까지 신구(申久'본명은 신순기)로 지으면서 본격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후 '고맙습니다' '네 멋대로 해라' 등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주로 전통적인 서민 아버지, 샐러리맨 등 배역을 맡았다.

'온화'와 '근엄' 사이를 오가던 그의 캐릭터는 2000년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하면서 대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 작품에서 신구는 '노구' 역을 맡아 땡깡(?) 피우기 좋아하고 고집 센 민폐 영감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함께 출연했던 '덜떨어진 아버지' 노주현,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소심남' 이홍렬의 환상적인 조합도 장안의 화제였다. 시트콤 대박의 후유증도 컸다. 괴팍한 영감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이후의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시트콤 이후 TV문학관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시청자들이 극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많이 들었습니다. 꼰대 할아버지가 근엄한 대기업 회장으로 나오니까 사람들이 이미지 매칭을 못한 거죠. 어쩌다가 노주현과 더블 캐스팅이라도 되면 그 작품은 거의 말아먹었죠."

◆'니들이 게 맛을 알어?' 광고로 대박

시트콤 코믹 연기 덕에 신구는 웬만한 톱스타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 명성은 CF 대박으로 이어졌다. 2002년 롯데리아 광고에서 '니들이 게 맛을 알어?'는 시트콤 못지않은 흥행을 누렸다. 이미 16년을 넘어선 올드 브랜드이지만 광고 업계에서는 아직도 '전설급'으로 통한다.

광고 콘셉트는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한 것으로 청새치 대신 대게를 잡은 노인이 툭 던진 말이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레전드급 카피가 사실은 신구의 애드리브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본래 대사는 '니들이 게를 알어?'였어요. 촬영장에서 딱딱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내가 즉석에서 던진 말인데 세트장이 뒤집어진 거죠. 재밌다고 생각한 감독이 그냥 그 장면을 내보내면서 대박으로 연결이 됐습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광고는 히트를 쳤지만 정작 제품 '크랩버거'는 큰 매출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 경쟁 제품이었던 새우버거와 맛의 차이가 없고 가격도 조금 비싸 소비자들한테는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매출 견인에 실패하면서 이 광고는 최고 명대사만 남긴 채 2년 만에 단종되었다. 카피 이미지가 너무 강해 정작 광고 대상인 '크랩버거'가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버거가 단종된 뒤에도 이 유행어는 '니들이 ×을 알어?'로 복제되면서 많은 아류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꽃보다 할배' '윤식당'으로 인기 이어가

드라마 시트콤 광고에서의 인기는 때마침 종편, 케이블TV의 버라이어티 바람을 타고 예능에까지 이어졌다. 첫 번째 출발은 2013년 방송된 tvN 나영석 사단과 함께한 '꽃보다 할배'였다.

평균 나이 76세 할배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여행기는 참신한 시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이 프로에서 신구의 애칭은 '구야형'. 본래 콘셉트는 인자함과 엉뚱함을 캐릭터로 맏형 순재와 다투는 설정이었으나, 실제에서는 '투덜이' 백일섭이 늘 현장에서 티격태격하는 바람에 멤버 간 중재와 타협을 맡았다. "순재, 근형, 일섭 모두 수십 년간 연극, 드라마 판에서 함께 뒹굴던 사이라서 서로를 너무 잘 압니다.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아요. 방송에 비쳤던 모습은 실제 우리들 평소 모습입니다."

알바생 '구요미'로 등장한 tvN '윤식당'도 시청률에서 공중파까지 제치며 흥행 레이스를 이어갔다. 알바생으로 주문을 척척 받아내는 것을 보고 '영어를 꽤 하시나요? 물었더니 '그냥 아는 단어 조합해서 의사소통하는 정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윤식당'은 현지 무더위 속에서 10일간 촬영이 진행됐다. 100시간 정도의 촬영 분량은 편집을 거쳐 '감독판' '특별판'까지 10회에 걸쳐 안방에 소개됐다.

◆노인 문제 다룬 연극 '장수상회' 대구공연

이번에 봉산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장수상회'는 치매를 앓는 노부부의 인생을 다룬 연극이다. 기억이 지워져 하루아침에 남남처럼 돼버린 부부가 겪는 해프닝과 가슴 뭉클한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전국구 연기인이지만 대구와의 인연은 별다른 게 없다고 했다. 뮤지컬 도시, 대학로에 준하는 연극 기반 시설이 갖춰진 곳 정도로 대구를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단체, 공연기획사에서 자주 불러줘 스킨십은 이어가고 있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어 대구와 안면을 틀 기회는 적었다고 아쉬워했다.

인터뷰 전날 공연장을 찾아 직접 연극을 관람했는데 2층 뒷좌석까지 그의 대사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직까지 성대가 건재하다는 증거였다.

"우리 세대 배우들한테 발성 연습은 기본이었습니다. 500~600석짜리 공연장은 집음(集音) 시설 없이 그냥 해도 끄떡없었습니다."

팔순의 나이에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비결에 대해 하루 1시간 30분씩 헬스클럽에서 가볍게 걷는 것이 건강 비결의 전부라고 말한다. 덜 늙었을 때는 양재천을 하루 8㎞씩 걸었다. "요즘도 소주를 수면제로 삼으시냐"고 물었더니 "어젯밤에도 혼자 한잔했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인터뷰 내내 그의 대답은 단답형이었다. 화려한 경력에 비해 자신을 드러내는 장황한 설명이나 자랑 같은 건 없었다. 잘 내려진 향 짙은 커피 같은 느낌,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밀치고 나설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아마도 이런 성격이 그의 60년 연기 장수 비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름 '구'(久'오래 변하지 않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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