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이상·김유정/ 홍재 펴냄
20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문학 천재는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요절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 이 둘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81주년이다.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긋고 떠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예술혼을 이해하며 한날한시에 함께 죽으려고 결의할 만큼 단짝이었다.
먼저 사망한 이는 김유정이다. 병마에 시달리던 그는 1937년 3월 29일에 오랜 벗인 안회남에게 쓴 편지 '필승 前'을 끝으로 외롭고 신산했던 삶을 마감했다. 김유정이 사망하고 19일이 지난 4월 17일 이상이 일본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운명의 장난치고는 둘에게 잔인한 해였다. 김유정 29세, 이상 27세였다. 연이은 비보에 둘의 가족과 벗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얼마 후 합동추도식으로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했다.
둘 다 살아생전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문학가였다. 기성 문학계에서는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거나 어린 아이의 말장난, 혹은 촌스럽고 수준 낮은 잡설로 치부했다. 그런 상황에서 둘은 가난, 고독과 싸우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결국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나니 후대가 둘을 천재 문학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상과 김유정의 첫 만남은 1935년 봄이었다. 김유정의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첫 조우가 이뤄졌는데, 둘의 성격은 판이했다. 김유정은 낯을 심하게 가리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고, 이상은 말 그대로 모던보이 투사와도 같았다. 성격은 달랐지만 어찌된 일인지 유독 잘 어울렸고 이후 우정은 점점 깊어졌다. 아마도 둘 다 몹시 가난한 데다, 폐병과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며,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았던 동병상련의 정 때문에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영혼의 짝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상과 김유정이라는 두 천재가 문학을 통해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남긴 주옥같은 글 중 삶이 직접 투영된 에세이만을 엄선해 당시 그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 삶의 순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작품들은 연대순으로 실려 있으며, 속어와 방언 역시 그대로 살려서 작품의 맛과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두 사람이 사후 그의 벗들이 슬픔을 억누르며 둘을 추억하는 글을 함께 실어 감동과 가슴 먹먹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소설가 채만식은 "유정은 단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쓰고, 수필을 썼다. 400자 원고지 1장에 대돈 50전을 바라고 피 섞인 침을 뱉어가며 소설과 수필을 썼다"고 회상했다. 시인 김기림은 "이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그는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이 없다.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책의 목차는 ▷프롤로그-이상'김유정, 두 문학 천재가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 ▷이상 다시 읽기 ▷김유정 다시 읽기 ▷이상, 김유정을 추억하다 순으로 싣고 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두 사람의 살아생전 마지막 대화를 잠시 소개한다. ▷이상=김 형(김유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이 형(이상)! 이 형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이상=김 형(김유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 이상은 김유정에게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그러나 김유정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김유정은 소설을 더 쓰고 싶어서 죽기 싫었다. 하지만 1937년 3월에 김유정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4월에 이상도 이승을 등졌다. 둘은 저승에서 만났을까. 32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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