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 창비/ 2012)
우리는 가끔 타인의 장례식에 가긴 하지만 정작 죽음이 자신의 실존적 영역 깊숙이 다가와 있다는 것은 잘 느끼지 못한다. 여전히 그것은 단지 남의 일인 것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내며 비로소 죽음이 내 삶에 깊이 들어와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그것은 한순간 승리에 도취한 장군들이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겸손하도록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외침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성공하고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에 있더라도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겸손한 자각이 필요하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소설이 바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1886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죽음문학'의 고전이다. 평소 죽음은 나의 현재와 관계없는, 결코 오지 않을 먼 미래의 사건으로만 여기며 살아온 중년의 성공한 법률가 이반 일리치가 갑작스럽고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음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반 일리치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족과 의사들의 태도가 그에게 심한 존재적 고독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의 분량은 생각보다 적지만 전하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이 소설은 이반 일리치의 동료들이 갑작스러운 그의 부고를 신문을 통해 접하고 나누는 대화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보다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관계된 승진을 먼저 떠올렸고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반 일리치 역시 살아 있었더라면 똑같은 모습을 보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힘든 과정에서 가까운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에 좌절한다. 반면에 자신을 돌봐주는 하인 게라심의 진실된 마음과 행동에는 고마움을 느낀다. 게라심은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요'라며 죽음을 향해가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반 일리치는 판사로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고 그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관행을 의심 없이 답습하며 살아가는 명예욕과 자만심이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삶에 대한 이런 태도는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많은 반성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그때까지는 살아온 이기적인 방식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성찰적 자세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다.
'만약에 정말로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내 생각과 행동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의심이 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111쪽)
우리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성찰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며 다른 자세로 삶을 의미 있게 가꾸어야겠다. 더구나 물질이 지배하는 요즘에는 도구적으로 전락해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숙고가 요구된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남아있는 삶을 나 자신의 성숙뿐만 아니라 타인을 향한 이해와 공감의 시간으로 채워가도록 톨스토이는 죽어가는 이반 일리치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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