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관광객 1000만 꿈꾸는 청송] <1>남관과 이오덕

미술계 큰 소나무 남관, 그의 이야기 담은 미술마을 만든다

남관을 사랑한 남자 조위래 씨. 그는 15년 동안 남관의 작품은 물론 그의 발자취를 찾아내
남관을 사랑한 남자 조위래 씨. 그는 15년 동안 남관의 작품은 물론 그의 발자취를 찾아내 '남관 갤러리'를 완성했다. 그는 최근 남관의 고향에 '남관 미술마을' 건립을 추진 중이다. 사진 박수빈 메디컬투어 편집국장 meditour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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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의 '남관 갤러리'에는 남관 화백의 작품과 함께 그의 사진, 그의 그림이 쓰인 잡지'포스터 등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편집주=청송은 흥미로운 문화가 산재한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될 정도로 자연자원이 풍부한 곳이고 국제슬로시티를 연속으로 인증받을 정도로 삶이 넉넉한 곳이다. 구한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항일의병이 일어난 곳도 청송이고 문학과 미술, 예술 등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인물들을 배출한 곳으로도 손꼽힌다.

지난해 청송을 찾은 방문객 수는 450만 명이다. 인구 2만6천 명, 전국에서 가장 작은 도시로 꼽히는 청송에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지금까지의 청송은 주왕산국립공원과 주산지 등 자연자원에 관광적 요소를 집중했다.

하지만 연간 관광객 1천만 명 시대를 위해 관광에 문화라는 옷을 입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청송의 문화를 발굴'발견하고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청송관광객 1천만 명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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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 이야기

한국 미술계에 남관(1911~1990)은 큰 소나무와 같다. 한결같은 고집과 굳건함으로 평생 미술만 바라보며 후배를 길러낸 늘 푸른 소나무가 바로 그였다.

청송군 부남면에서 태어난 남관은 열네 살이란 이른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했다. 일본에서 크게 이름을 날린 남관은 국내에 들어와 제1회 국전(國展)에서 서양화부 추천작가의 위치까지 오르며 그 명성을 이어갔다.

그러나 남관은 보통의 화가들과 달랐다. 자신의 함양을 누리기는커녕 또다시 프랑스 유학길을에 나섰다. 배를 타고 석 달 만에 프랑스에 도착한 그는 매일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며 미술 공부에 심취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머리숱이 덥수룩했던 그가 귀국할 때쯤 머리가 다 빠진 대머리가 됐다는 지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만큼 타국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남관은 프랑스 유학 4년 만인 1958년 한국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살롱 드메전(展)에 초대됐다. 이후 그는 1955년 망통국제비엔날레에서 뷔페와 타피에스 등 세계적 거장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다. 당시 이 비엔날레는 피카소가 초대될 정도로 위상이 높았기 때문에 남관의 수상으로 한국 작가의 실력과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68년 귀국한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학도를 길러내는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197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1년 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1990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상이 추서되며 한국 미술계의 위대한 역사가 됐다.

◆남관 갤러리와 남관 미술마을

청송읍 소재지에서 달기약수터을 조금 못 가 좌측 언덕에 '남관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이 건물 4층에 카페와 함께 마련된 이 갤러리에는 남관의 역사가 전시되고 있다. 남관의 작품 20여 점은 물론 살아생전 그가 쓰던 도구와 메모, 심지어 비행기 표까지 전시돼 있다. 남관에 대해 무지한 사람도 이곳만 유심히 둘러본다면 그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조위래(57) 남관 갤러리 대표는 15년 전부터 남관을 짝사랑해왔다. 그는 2000년쯤 청송새마을금고에 재직할 때 우연히 남관이 지역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돼 그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2003년 남관의 홈페이지 '남관'(www.namkwan.com)을 개설하고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남관이 남긴 7천여 작품 중 그는 3천500여 작품의 도록과 실물을 수집해 이 홈페이지에 자료를 게시했다.

조 대표는 "미술에 조예가 없었던 나는 남관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뭔가 흥미로움이 생겼다.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의 역사를 역으로 찾아보자고 생각해 그에 대한 모든 걸 수집하고 정리하게 됐다"고 했다.

남관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그의 가족과도 연락할 정도로 소통이 깊어진 조 대표는 매년 남관 묘소까지 정리할 정도로 애정이 남다른 관계가 됐다.

조 대표의 노력으로 남관이 자란 청송군 부남면 일대에는 남관 미술마을도 새롭게 조성될 예정이다. 주민들 스스로 벽화를 칠하고 그에 대한 스토리를 꾸며가며 또 하나의 관광명소를 꿈꾸고 있다. 조 대표는 "미술마을 조성과 함께 내가 보유한 작품 등을 경북도청이나 인근 안동 등에서 전시를 해보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남관의 작품과 그의 예술혼 등을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문=대한관광경영학회 김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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