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이스피싱 의심 되지만 민원 걱정 더 클때 있어요"

금융기관 직원 보호 제도 필요…은행 직원이 막은 사건 145건, 2년간 피해 예방 금액 43억원

지난 16일 오후 대구영광신협. 김정선(41) 대리는 정기예금을 모두 해지해 달라는 조합원 A(70) 씨의 표정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종종 지점을 방문해 낯이 익었던 A씨는 이날 따라 유난히 낯빛이 좋지 않았고 불안해했다. A씨는 지점에 들어설 때부터 전화를 끊지 못했고, 수화기 너머로 "해당 조합을 모두 방문해 해지하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한 김 대리는 "다른 조합 계좌를 중도해지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둘러댄 후 경찰에 즉시 알렸다. A씨는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정기예금 등 1억4천만원을 송금하려던 참이었다. 이내 경찰이 도착했고, A씨는 전 재산을 날릴 위기를 모면했다. 22일 수성경찰서는 김 대리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앞서 20일 대구축산농협 죽전지점 우지연(39) 과장도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거액의 적금 통장을 해지하려던 고객을 경찰에 알려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 이영기 성서경찰서 지능팀장은 "평소 지역 금융기관에 보이스피싱이 의심스러우면 즉시 신고해달라고 요청한 덕분에 은행도 적극적으로 피해 예방에 나섰다"고 밝혔다.

경찰의 예방 활동에도 불구,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가 끊이지 않으면서 금융기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1천만원 이상의 고액 인출 시 은행 직원이 경찰에 알리기만 해도 피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어서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 공로로 감사장을 전달한 사례는 2016년과 지난해 145건에 이른다. 피해 예방 금액도 43억원이나 되고,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검거해 신고포상금을 받은 은행 직원도 8명에 달한다. 금융기관 역할이 커지면서 경찰은 금융기관의 고객창구 담당자와 핫라인을 개설하고 정기 간담회도 열고 있다.

문제는 은행 직원들이 범죄 피해자와 실거래자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은행에서 직원들이 돈의 용도를 물으면 전세보증금이나 결혼자금, 해외여행 경비 등으로 둘러대라고 지시하는 경우도 잦다. 모 은행 창구 직원은 "'내 돈을 내가 찾겠다는 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역정을 내면 도리가 없다. 의심스럽다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범죄 피해자가 아니면 책임은 고스란히 은행 직원이 져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경찰은 공익 신고를 하는 은행 직원들을 보호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실제 일부 현금 인출이 지연된 고객들이 불친절 민원을 금융감독원에 제기하기도 한다"면서 "민원에 따라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시작되면 은행들은 민원 평가 점수에 영향을 미칠까 봐 노심초사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대구경북지원 관계자는 "정당한 절차로 발생한 민원은 해당 금융기관에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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